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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12. 2021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451

15장 6일째 저녁

451.


 마치 미카엘과 루시퍼가 대립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사와 악마가 있다면 누가 이길까. 마동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천사가 이긴다는 쪽에 한 표를 던질 수가 없었다. 그것은 왜 일까. 천사는 악마를 이겨야 하고 늘 이겨왔다. 우리는 천사를 당연히 좋아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마동은 천사를 둘러싼 적막감과 천사의 날개가 어깨를 뚫고 나오는 고통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천사의 맑고 깨끗함에 대해서도, 백색의 공포가 주는 충격에 대해서도.


 천사가 악마를 이기는 이면에는 마음속 여러 감정의 폐허가 악마보다 조금 덜해서 그럴 뿐이다. 애를 써도 천사에 한 표를 던질 수가 없었다. 결국 천사와 악마는 둘 다 연민스러운 존재였다. 누가 이기는지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병아리 암수 구별을 해내는 감별사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마동은 천사와 악마, 둘 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똑같이 등을 두드려주고 싶었다. 꼭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잘 지느냐 하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순간도 있다. 자기 자신은 반드시 이겨야 할 존재가 아닌 것처럼.


 이어서 마동이 서있는 테트라포드로 불어오는 기이한 공간의 냄새가 났다.


 철탑 인간을 떠 올렸다. 손이 세 개, 말할 때마다 쇳가루를 떨어트리던 철탑 인간. 그리고 견고한 관능을 지닌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마동은 생각했다. 철탑 인간은 꿈속에서 마동에게 고문을 가했다. 철탑 인간이 왜 그토록 마동을 싫어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철탑 인간은 본디 인간을 싫어하지 않았다. 철탑 인간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딱딱하고 무섭게만 보이는 철탑 인간을 인간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게 했다. 꿈속에서 만난 철탑 인간은 마동에게 고문으로 고통을 줬지만 상당히 자조적이었다. 철탑 인간의 얼굴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었다. 마동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줬지만 철탑 인간 역시 극장이기를 포기한 텅 빈 층의 건물처럼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고통의 모습에는 억제와 변하지 않는 보류가 서려있었다. 교언영색을 한 인간들을 내려다보며 인간을 서서히 배제하게 되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언제나 고요했다. 언제나라고 말하지만 딱 한 번이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본 건 며칠 전 한 번 뿐이었다. 그리고 지저분한 스크린 속에서 또 한 번 봤을 뿐이다. 그런 사라 발렌샤 얀시엔이 누구인지 왜 마동에게로 왔는지 궁금하지만 그대로 묻어 둘 수밖에 없었다. 마동은 사라 발렌샤 얀시엔을 만나 후 며칠 동안 낮과 밤의 차이도, 꿈과 현실의 경계도 없는 모호한 여백의 가장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사라 발렌샤 얀시엔은 는개의 알터 에고였을까.


 그것 역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결심한 듯 입을 굳게 다물고 마동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마동은 철탑 인간을 미워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 비해서 마동은 확실하게 철탑을 좋아하고 있었다.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조깅을 하면 으레 몇 차례는 철탑 밑을 지나쳐야 했다. 타인이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철탑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마동은 조깅을 하다가 철탑 밑에서, 철탑의 다리 부분에 앉아서 싸늘하고 딱딱하고 두드리면 탕탕 소리가 나는 철탑의 느낌을 손바닥으로 느끼며 지내왔다. 철탑은 차갑고 긴 쇠붙이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동을 끌어당기는 무엇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철탑 인간에게 마동은 꿈이지만 고문을 당했다. 그것은 끔찍한 고문이었다. 그럼에도 마동은 철탑은 마동을 미워하지 않았다. 인간은 철탑을 만들어내지 말아야 했을까. 아니다. 철탑은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해야 이 세상은 지극히 ‘보통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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