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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26. 2021

런던 팝에서 12

단편 소설


12.


 개성일까.     


  계단을 타고 올랐다. 이층으로 가는 입구는 영락없는 몇 년 동안 건물에 그 누구도 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달큼하고 시큼한 냄새가 계단에는 존재했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그 냄새를 맡았다. 평소에 맡을 수 없는 냄새였다. 어딘가에서 한 번 맡아본 냄새지만 어디서 맡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3층으로 올라가니 노랫소리가 미미하게 흘러나왔다. 문을 여는 순간 노랫소리가 대공포 소리로 바뀌어서 내 몸을 두드렸다.


 어제의 그 발랄한 여자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여전히 껌을 어금니로 씹고 있었고 아주 짧은 반바지에 스타킹을 신고 있었는데 스타킹의 색이 왼쪽 오른쪽이 달랐다. 스타킹의 색을 말하자면 어렵다. 퍼너먼트 블루 딥, 오아시스 옐로 칵테일 같은 색이다. 어떻든 총천연색의 컬러가 두 다리에 퍼져 있었다.


 나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천오백 원을 꺼내 건넸다. 예의 발랄한 여자는 껌을 씹으며 오늘도 오셨네요, 라며 티켓과 볼펜과 메모지를 건네주었다. 대기실로 가서 자리에 앉으니 티켓을 보여 달라고 누군가 말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카운터에서 껌을 겁나게 씹는 아르바이트 여자였다. 발랄한 여자가 내게 주었던 티켓을 다시 여자에게 주었더니 “잠시 대기”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5분 후에 킨 사이다에 빨대를 꽂아서 주었다. 킨 사이다 병은 일반 사이다 병보다 훨씬 작았다.


 어, 하며 무엇인가를 질문하려 했지만 발랄한 여자는 자신의 일은 다 끝났다며 껌을 씹으며 카운터 속의 자기 세계로 숨어 버렸다. 대기실에는 어제보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사이다를 마시며 메모지에 신청곡을 기입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오다니. 나도 신청곡을 기입했다.


 [Keane- Somewhere Only We Know, Janis Joplin- Summertime]라고 적고 메모지를 가지고 음악 감상실 안으로 들어갔다. 극장처럼 안은 컴컴했다. 천장에 동전 크기만 한 다운라이트가 빛을 내고 있었고 의자는 극장의 의자보다 더 컸으며 몸이 의자에 파묻힐 정도였다. 사람들이 새벽인데도 많았다. 요즘에도 음악 감상실이 이렇게 장사가 잘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더더군다나 이 죽어버린 건물에서.


 아, 어쩌면 집으로 가는 교통편을 놓치거나 돈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 남녀가 같이 있고 싶은 곳을 찾아서 이곳으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이나 뮤직비디오는 컴퓨터로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고 이어폰으로도 고성능 음향으로 들을 수 있는데 이런 곳을 찾아서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음악 감상실에 사람들이 꽉 차면 150평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고 이미 50명 정도가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사람들은 산발적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야 했다. 음악 감상실에서는 CCR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CCR은 한 번도 그들의 이름을 저렇게 줄여서 말한 적은 없었지만 우리는 대체로 그냥 CCR이라 불렀다. 감상실을 둘러보며 내가 앉을 만한 자리를 찾는데 한 줄에 딱 한 명이 앉아있는 줄이 있어서 그 줄에 가서 한 의자에 앉았다.


 푹신했다. 푹 파묻혔다. 대부분의 줄에는 사람들이 커플 단위나 다리를 다른 의자에 걸쳐 놓은 채 앉아 있었다. 자리를 잡은 다음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 디제이 박스에 메모지를 밀어 넣었다. 디제이 박스는 유리 벽 좌측 밑에 예전의 극장 티켓 판매대처럼 반달 모양의 구멍이 있고 그 속에 신청곡을 밀어 넣으면 된다.


 디제이는 잉위 맘스테인처럼 생겼고 역시 머리가 무척 길었다. 헤드폰을 쓰고 레코드판을 보고 있다가 신청곡이 들어오면 헤드폰을 벗고 구멍 쪽으로 가서 나의 신청곡 메모지를 집어 들고 한 번 보더니 뒤로 돌아 레코드판을 돈을 세듯 촤르르 넘겨가며 신청곡의 레코드를 집어 들었다. 집어 든 레코드판을 보니 제니스 조플린의 것이었지만 킨의 앨범은 찾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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