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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Dec 16. 2019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

시라고 속삭이고픈 글귀



그렇게 사랑하고 싶다



나무는 인간보다 오래 살면서 인간만큼 보지 않는다 나무의 사랑은 수줍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법은 없다 나무와 나무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 거미줄 같은 뿌리를 진화의 시간으로 움직여 서로를 더듬고 알아가며 사랑을 한다 그들만의 수줍은 통로로 실핏줄을 절실하게 뻗어 서로를 기억한다 기억은 수백 년을 흘러 단단하게 박힌다 나무는 외롭지 않다 딱딱하고 컴컴한 저 어두운 곳에서 눈이 아닌 촉감으로 사랑을 나눈다 오로지 뿌리를 뻗어 서로를 만지고 서로의 몸으로 파고들어 은밀하게 온 몸으로 사랑을 확인한다 그들은 눈으로 보기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나무는 외롭지 않다 그들의 사랑은 기다림이다 마주 한 뿌리가 언 땅을 헤치고 서로에게 닿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은 뿌리가 꺾여 나갔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뿌리가 떨어져 나갈 때마다 나무의 숨은 수액을 따라 올라가 나뭇잎 하나를 떨어트린다 그렇지만 나무는 외롭지 않다 그들의 사랑이 많은 곳을 걸으며 인간은 나무의 삶을 조금씩 뺏는다 나무는 우리에게 기꺼이 생명을 나눠주지만 외롭지 않다 그들의 사랑은 단단하게 서로를 잉태하기에 눈으로 사랑을 좇는 나는 나무처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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