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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4. 2021

변심한 자갈치 녀석

일상 에세이

변심한 자갈치


편의점 탐방 중 자갈치가 눈에 딱 들어오기에 그대로 집었다. 자갈치를 도대체 얼마 만에 먹어 보는 거야. 야심 차게 뜯어서 맥주와 함께 먹으며 ‘인간은 왜 전전두엽이 도파민으로 넘치는가’라는 인문과학책을 읽는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읽고 있던 ‘태엽 감는 새’를 읽을 요량이었다.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방법 중에 조깅 후 뜨거워진 몸을 찬물로 잘 식혀준 다음 선풍기 바람 솔솔 맞으며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 것이다. 거기에 자갈치를 곁들여 먹는다. 맥주를 한 잔 벌컥벌컥 마신 다음 자갈치를 와작 씹어 먹는데 아, 이런. 이럴 수가. 이런 제길.


도대체 사람들이 자갈치에 얼마나 악플을 달고 욕을 했기에 자갈치가 이렇게 싱거워졌다니. 자갈치 정도 매일 밥처럼 먹는 것도 아닌데. 매일 몇 끼 챙겨 먹어야 하는 밥이야 건강이니 어쩌니 하며 유난 떨어도 되지만 한 달에 한 두 봉지 정도 먹는 자갈치야 옛날 그 맛 그대로도 괜찮잖아.


그러니 수출하는 라면과 새우깡이 더 맛있다고 유튜브 영상이나 SNS에 올라오기도 한다. 나는 국도 거의 먹지 않고 설렁탕을 먹으러 가도 소금을 넣지 않고 그 밍밍하고 고소한 맛이 좋아 그대로 먹는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소금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싱겁게 먹는다. 하지만 라면이나 과자 정도는 짭조름한 맛으로 먹는 게 좋은데 과자와 라면도 변심을 했다.


짭조름한 소금기를 자갈치에서 뺐다고 해서 아파야 할 사람이 아프지 않거나 병에 걸릴 사람이 병에 안 걸리는 것일까. 제 아무리 청소년을 법으로 금연을 시키고 담배를 팔지 못하게 해도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늘 핀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과자는 양도 줄어들고 가격도 올라서 자주 사 먹을 수도 없는데 맛까지 변심을 하면 어떡하나.


라면에서 MSG가 빠지고 자갈치에서 짭조름한 맛이 빠지게 된 계기가 아마도 십여 년 전 먹거리 엑스파일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이나 브런치가 없어서 주로 트위터를 했었다. 자랑 아닌 자랑을 하자면 나와 트위트 맞팔이 되어 있는 유명인이 몇 있었는데 가수 김종서, 당시 두산 박용만 회장, 당시 피디수첩 피디였는데 이름이 기억 않남, 일본 아브 배우 마리아 오자와 등 몇 있었다. 그들은 보통 자신을 팔로워 하는 일반인들은 많지만 그들이 팔로워 하는 수는 적은데 왜 나를 팔로워 했는지 그 이유를 나도 잘 모른다. 


그때에도 열심히 트위터에 140자 이내로 글을 올렸었다. 먹거리 엑스파일이 유행이었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맹신 수준이었다. 조금이라도 “제가 한 번 먹어 보겠습니다”라는 말에 반기를 들면 악플과 공격이 들어왔다. 그때 MSG를 조금만 사용하면 그 식당은 아주 나쁘고, 먹는 것으로 몹쓸 짓을 하는 양 비쳤다. 너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몰래카메라로 온통 편집 질로(나는 편집을 주로 하는 일을 하기에 잘 안다) 사람들을 티브이 화면 앞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트위터에 그 점을 꼬집으며 글을 올렸는데 많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정말 맹신이었다. 나는 그래서 만약 MSG가 문제라면 MSG를 만드는 공장을 취재해야지 왜 그걸 사용하는 식당을 망하게 하는지 이유를 말해달라고 반문했다. 그렇지 않은가. 미원 만드는 공정은 다 개방이 되어 있고 예약을 하면 견학도 가능한 것으로 안다. 방송국 놈들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방송을 타게 되면 폭주는 하지만 멈추지를 못한다. 미원, 즉 조미료는 홈페이지에 모든 과정을 오픈해놨고 한 번이라도 들어가서 보고 나서 말을 하면 괜찮았을 텐데 사람들은 믿고 싶은 걸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각인한다. 그때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라면에도, 자갈치에도 조미료가 사라지고 대체 양념이 들어가게 된 것 같다.


조미료의 역할은 이런 것이다. 떡볶이는 붉은색이다. 기본적으로 고춧가루가 들어간다. 그러니까 떡볶이는 매운 음식이다. 매운 걸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거기에 조미료를 넣으면 맛이 중화가 된다. 조미료는 감칠맛을 내는데 그 감칠맛이라는 맛이 밍밍한 맛, 닝닝한 맛을 말한다. 그래서 고춧가루가 들어간 떡볶이에 밍밍한 조미료가 들어가면 중화가 되어 달큼한 맛이 나는 것이다. 천연 조미료가 다시마인데 다시마를 많이 넣어서 국물을 우려내 보면 그 맛을 알 것이다. 조미료가 몸에 나쁘려면 많이 섭취를 해야 한다. 많이, 아주 많이 먹어야 한다. 그건 술을 많이 마시는 것과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보다 몸에 덜 해롭다. 무엇보다 어떤 과학잡지에도 조미료가 몸에 나쁘다는 보고가 없다고 한다.


다시 자갈치로 돌아와서, 편의점 탐방이 취미 중 하난데 늘 새로운 과자들이 가득가득하다. 마트에 가도 과자는 이미 수십 종이다. 선택의 폭이 아주 넓어졌다. 종류는 어마어마하고 맛도 다양하지만 보통 우리는, 인간은, 과자는 늘 먹던 걸 집어 오는 것 같다. 새로운 과자가 나오면 한 번 먹어보기는 하겠지만 과자 자체를 한 달에 한 두 봉지 정도 먹기에 자주 먹던 걸 먹게 된다.


어릴 때는 계란과자도 자주 먹었고 사브레도 자주 먹었고 죠리퐁도 자주 먹었지만 대학교를 가고 군대를 하고 사회인이 되면서 점점 멀리하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떠난 여인을 떠올리듯 문득 자갈치가 먹고 싶어 한 봉지 사 먹었는데 이렇게 변심한 맛이면 좀 슬플 것이다.


자갈치는 현재 우리 모습의 단상이 아닌가 한다. 하고는 싶지만 타인의 눈치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는 없어서 절충안을 내밀어 수평을 맞추어서 하기는 하지만 내심 마음을 꽉 채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생각이 나면 그 자리에 자갈치는 있으니 어떻게든 한 번씩 먹게 된다. 그 정도라도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줘서 괜찮다.


자갈치와 어울리는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내가 좋아한 김종서의 대답 없는 너.

https://youtu.be/ZZW6uXFs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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