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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3. 2021

그녀를 사랑한 죄 12

단편 소설

  12.


 식탁이 있는 곳으로 갔을 때 떠들썩하던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식탁의 한 의자에 앉았다. 남편은 그녀가 죽었음에도 진수성찬을 차리고 파티를 즐기려 하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와 함께 먹기에 그녀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차려놓고 늦은 밤 파티를 즐기려는 것일까.


 나는 남편이 식탁에 오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잘 안 되겠지만 차분하게 기다리자.


 남편은 여자들과 집의 어딘가에 숨었다. 하지만 왜? 그들이 왜 숨었을까. 어쨌든 내가 오는지 알고 숨은 것이다. 계단 위의 남자가 알려 줬을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지는 못 할 것이다.


 어쩌면 계단 위의 남자는 나에게 남편이 그녀가 죽었음에도 혼자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식탁으로 남편이 왔을 때 나는 극도의 분노에 휩싸여 있는 내 마음을 심각하게 드러낼지도 모른다. 그것을 계단 위의 남자는 노리고 있었을까.


 그녀는 결국 남편 옆에서 거대한 결락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죽임을 당한 것이다. 어째서 그녀를 자유롭게 내버려 두지 못하고 심연의 끝에서 고통받게 한 것인가.


 남편은 악마의 모습이다. 계단 위에 앉아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는 남자의 모습보다 더 추악하고 어두운 모습이 남편의 모습일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그녀가 죽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여자들과 많은 요리를 차려놓고 파티 따위나 즐기려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용서할 수 없다.


 몇 명이 먹을지 모르겠지만 요리는 터키가 통째로 한 마리 기름에 둘러 구워져 있고 양송이 수프와 오복 쟁반처럼 보이는 궁중 요리도 있었다. 달팽이 요리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비대한 거위의 간이 삶겨 연기를 대기 중으로 엑토플라즘처럼 올리고 있었다.


 남편은 집 밖에서 돈을 벌어서 그녀에게 던져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녀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여자였다. 자신만의 고객을 유치했고 그녀만의 스타일로 고객을 늘려갔다. 남편이라는 존재가 굳이 필요 없는 여자였다. 특히 심연의 결락을 가져다주는 남편은.


 식탁에 앉아 있은 지 한 시간이 넘어간다. 남편과 여자들은 식탁에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그녀의 집 안을 둘러보았다. 모든 물품이 정리가 잘 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심각 하달 정도로 정리가 되어 있다. 마치 집착증에 걸린 환자가 정리해 놓은 것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앉아있는 식탁보, 심지어 요리가 놓은 접시도 오와 열을 맞추어서 놓여 있다. 이건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품처럼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식탁에서 일어나 방을 둘러보았다. 남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집 밖으로 나갔다면 소리가 들렸을 텐데 분명 이 큰 집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의문이 자꾸 든다. 왜 남편이 숨은 것일까. 집으로 불러 파티를 같이 하려던 여자들까지 같이 숨을 이유가 있을까.


 그녀의 방이 보고 싶었다. 그녀의 집 방문을 전부 다 열어 보았다. 역시 모든 것이 부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어있다. 그녀의 방은 있어야 할 건 다 있는 방이지만 그녀가 죽어버려서 그런지 공기는 죽어 있었다.


 식탁에 돌아와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그녀의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음식이 식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음식은 영원히 식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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