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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2. 2021

그녀를 사랑한 죄 11

단편 소설


11.


 나는 그만 눈물이 났다. 고양이를 통해 그녀가 생각이 나서였을까. 그녀가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을 좋아한 것은 트레이시 에민이 어린 시절 성폭행의 역경을 딛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과 지내면서 알 수 없는, 감당할 수 없었던 마음의 큰 결락을 지니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그녀가 트레이시 에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눈이 그걸 말해주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결락으로 인한 마음의 공백이 너무나 크고 넓고 깊어서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린아이가 백사장에 물을 계속 붓는 것처럼 그녀의 뻥 뚫린 공백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부어도 또 부어도 결락이 만들어낸 공백의 곳곳에 구멍이 생겨 다 빠져나가버리고 만다. 백사장에 물을 부었다는 아이의 기억만 있지 그곳에는 어떤 과거의 물이 부어졌지만 흔적이 없는 것이다. 지네도 살지 못하고 잡초도 피지 않는 마르고 건조한 삭막한 사막 같은 피폐함이 그녀의 마음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나로 하여금 그 피폐한 곳에 물을 부어 조금이라도 축축하게 하려고 했다. 그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혼자 집으로 가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 그녀는 격렬하게 내리는 소나기 같은 건조함이 시시때때로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를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남편이 잠든 새벽에, 살롱에서 고객이 탈의실에서 옷을 입어보는 오후에, 장을 보는 저녁에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


 남편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어떤 남자로도 채워지지 않을 그 축축함을 나를 통해서 그녀는 채우려다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나에게 안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격렬한 고통을 그녀는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밤이라 누구도 내가 우는 걸 보지 못했지만 누군가 봐도 상관은 없었다.


 나는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집에는 꼭 그녀가 있을 것만 같다. 이미 죽어버린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녀가 보고 싶어서 나는, 나의 다리는 나도 모르는 새 그녀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녀의 집 앞에 섰을 때 그녀의 집에는 불이 다 커져 있고 창문으로 여러 명의 실루엣이 보였다. 남자는 한 명으로 보였고 그 남자는 그녀의 남편일 것이다. 나머지 몇 명은 실루엣으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었다.


 분노 같은 것이 올라왔다. 나의 몸은 작용 반작용 현상으로 벌벌 떨렸다. 그녀의 집 대문 가까이 갔다. 높이가 1. 5미터 정도의 아담한 대문이었고 그녀의 집은 정원이 딸린 2층짜리 고급주택이었다. 대문 앞에 섰을 때 현관문 계단에 계단 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어느 날 내 앞에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그녀가 죽고 난 후부터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이미 이쪽 세계로 넘어와 있었다.


 나는 계단 위의 남자에게도 할 말이 있었다. 대문을 넘어 현관문 쪽으로 성큼성큼 갔다. 남자는 계단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잠기지나 않을까 나는 달려서 현관문으로 갔다. 다행히 문은 잠기지 않았다. 남자는 문을 잠그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현관문을 여니 남자는 벌써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2층은 중2층으로 타원형의 실내계단으로 올라간다. 2층에서 그녀의 남편과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름과 고기가 익어가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잔뜩 났다. 식탁이 있는 곳으로 가니 여러 종류의 요리가 가득했다. 남편은 아내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결락을 엄청나게 끌어안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채 살아가는 아내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이 견딜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고 했지만 남편이 그녀를 죽였는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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