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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9. 2021

태엽 감는 새 2

하루키 장편 소설

태엽 감는 새는 2권으로 넘어오기 전 전쟁 포로의 살가죽을 벗기는 고문하는 장면이 몹시 흥미롭고 두려울 정도로 잔인한 이야기가 있고 난 후 2편으로 넘어온다.


2편에서는 아내가 어느 날 문득 집을 떠나 회사도 출근하지 않고 집으로도 돌아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초조하면서도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태엽 감는 새 2권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떤 종류의 천박함, 어떤 종류의 물구덩이, 어떤 종류의 어두운 부분은 그 자체의 힘으로 그 자체의 사이클을 통해 점점 커지죠. 그리고 어느 시점을 지나면 아무도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없게 되죠. 가령 당사자가 멈추고 싶어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문장이 나오는데, 이 문장을 읽으면 요즘 댓글을 다는 사람들, 즉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어떻든 열린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에게 심각하고 입에 담지도 못할 악플이 이렇게나 많이 달리는 경우를 보는 건 처음이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실력의 격차가 거의 없다. 단지 그날의 컨디션, 기분, 음식, 기후 같은 것들의 영향으로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5년이 지난 후에도 똑같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휴대폰을 들고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그건 어떤 종류의 천박함, 어떤 종류의 어두운 부분의 자체적 힘으로 점점 사이클을 가동하며 커지는 것이다. 확대 반복된다. 그리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좀비처럼 의지만으로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멈추지 못한다.

 

나는 흑인이 되고 싶었던 거야

7월이 다 지나간다. 매년 7월이 지나가면 내 몸에서도 알 수 없는 어떤 물 같은 것들이 7월과 함께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작년에는 7월 내내 비가 오거나 태풍이 와서 해변에 거의 나오지 못했다. 올해 처럼 한 달을 꼬박 내내 오전에 나와서 책을 좀 읽을 수 있는 이 충족되는 이 기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백사장에서 뒹굴 거리며 홀라당 타버리는 덕분인지 어젯밤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켰다. 28도로 맞추었는데도 에어컨 바람은 춥다. 매년 습관처럼 되어 버려서 여름의 백사장에서 하루키를 읽는 재미를 알아버린 이상 이 재미를 놓을 수가 없다.


일 년 중에 가장 풍부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계절이 여름이고 또 7월이다. 이 7월이라는 달은 나에게 있어서 에너지 같다. 7월이 끝맺음을 맺고 나면 아마도 8월은 어어? 하는 새 찰나로 지나갈 것이다. 여름이 꺼지는 노을이 질 때 또 한 번 몸에서 왕창 무엇인가가 빠져나가 공동이 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무기력과 무력함을 느끼겠지. 계절에 인간이 이길 수는 없다. 인간은 비록 초라하고 개개인으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쓸모없는 존재일지 모르나 모여들어, 하고자 하면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한다. 이 코로나 시기도 어떻게든 헤쳐낼 것이다.


어제 한 초등학생이 쓴 글을 봤는데, 자신의 엄마가 선별 진료소에서 일을 하는데 사람들이 엄마에게 욕을 하는 것을 보고 글을 올리게 되었다. 선별 진료소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코로나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폭염도 이겨내는데 사람들의 악플은 견디기가 힘들다. 태엽 감는 새에 나오는 것처럼 어떤 종류의 천박함과 어떤 종류의 물구덩이, 어떤 종류의 어두운 부분은 그 자체의 힘이 생겨 버려서 악플을 쏟아내는 당사자는 그 힘에 먹혀 버리고 만다. 당사자는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다.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사람인 것이다.  


저어어기 이번에 출렁다리가 생겼다고


요즘 유행하는 출렁다리가 저기에 생겼다. 며칠 동안 무료라서 사람들이 개미들처럼 줄줄 다리에 오르고 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개미떼처럼 모여들어서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다. 멀리서 봐도 개미 병정들처럼 다닥다닥 붙어서 출렁다리를 건넌다. 사람들은 엄청난 위험도 막상 닥치지 않고 시간이 오래되면 무뎌지고 ‘설마’가 마음을 온통 휘젓는다.


7월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타올랐고 이제 꺼져간다. 내년 7월이 올 7월처럼 깨끗하고 청량하게 뜨거우리라는 보장이 없기에 하루 이틀 남은 이 7월을 하루키를 읽으며 온몸으로 즐기는 것뿐.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https://youtu.be/2s4slliAtQU

뭐니 뭐니 해도 여름에는 비치보이스의 서핀 뮤직이지

비치보이스가 한창 활동하던 60년대의 캘리포니아는 지구 상에서 가장 풍족한 도시였다. 미국의 자본이 엄청나게 흘러들어 갔다. 그 수준이 작은 나라와 맞먹었다.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것 중에 비치보이스가 있었다. 파라솔과 태양, 해변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을 노래했다. 미국의 다른 도시나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었다.


비치보이스에는 잘 알겠지만 브라이언 윌슨이 있었다. 비치보이스와 맞먹었던 그룹이 영국의 비틀스였다. 거기에는 존 레넌이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여자나 노래하는 보이밴드였다. 신나게 노래나 부르자, 이 좋은 세상에서 그렇게 살자. 뭐 이렇게 시작했는데.


비틀스의 미국 상륙이 이뤄지고 비치보이스는 그런 비틀스를 보고 비틀스는 미국의 서핀 뮤직의 비치보이스를 보게 된다. 그리고 브라이언 윌슨과 존 레넌은 서로의 음악성을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하고 여자, 파라솔, 젊음을 노래하던 것에서 벗어난다. 그러니까 물질보다는 정신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어떻든 브라이언 윌슨 씨는 역경과 고난(영화 러브 앤 머시를 보면 잘 나타난다. 세기의 앨범 ‘펫 사운드’가 탄생된 이야기를 그렸다)을 이겨내고 지금도 살아있으니.


하루키는 음악 에세이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에서 브라이언 윌슨을 말하고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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