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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Oct 01. 2021

볶음밥을 하면

인정을 받는다

볶음밥


집에서 볶음밥을 만들 때 법칙은 없. 다. 밥이 많고 반찬이 없을 때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기름을 두르고 볶으면 그만이다. 호주산 소고기도 많아서 당근과 파를 썰어서 넣고 볶으만 소고기 볶음밥이 완성된다. 소고기는 좀 질기다. 그래서 씹는 맛이 있다.


이렇게 반 정도 볶고 반은 김치를 넣어서 볶았다. 그러면 이름이 소고기 김치볶음밥이 된다. 이렇게 볶음밥을 만들면 어쩐지 집에서 먹는 한 끼가 마치 어떤 날을 기념하는 듯한 분위기를 가지기도 한다. 볶음밥만큼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없고, 또 일회용 볶음밥도 많아서 그저 데우기면 하면 되는 볶음밥이지만 자주 해 먹지 않는다.


어릴 때는 볶음밥 하면 중국집 볶음밥을 최고로 쳤다. 웍에서 튀기듯이 볶은 볶은밥에 우리는 한껏 취했다. 양도 많고, 특히 같이 튀겨진 듯 그러데이션으로 튀김옷이 입혀진 계란 프라이와 함께 먹는 그 맛은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었다. 짜장면보다 더 비쌌고 우리에겐 짜장면보다 더 맛있는 게 볶음밥이었다. 그때의 볶음밥에는 짜장은 곁들일 수 없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집에서 볶음밥을 하면 의미가 있는 날처럼 여기곤 한다. 볶음밥은 사실 여러 반찬을 꺼내고 담아서 먹기 귀찮거나 힘들기 때문에 한 접시에 담아서 먹는다. 그게 본질일지는 모르나 예쁘게 보이는 볶음밥은 그것만으로 사실을 덮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볶음밥이 맛있으면 인정받을 수 있다. 나 자신 이외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살아간다고 느끼는 일이다.


볶음밥을 먹다가 생각을 해봤다. 우리는 왜 살아갈까. 우리는 어쩌다가 태어나서 살아가기보다 어느 시점부터는 살아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가. 이 질문은 아주 오래전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 고민해왔다. 도대체 우리는 왜 살아가는 거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치고받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거지? 게다가 그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말하고,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 태어나서 죽음이라는 끝으로 가는 인생일 뿐인데 왜 치열하게 살아가며, 그러려고 살아가는 것일까.


가끔 우리는 정체성이나 주변성 때문에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나는 왜 이럴까? 왜 제대로 안 되는 것일까? 또는 내 친구는 이런데 나는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같은 생각을 가끔씩 한다. 이런 정체성은 가족 간에도 일어난다. 어릴 때야 다 비슷하지만 시간이 흘러 가족의 구성원에서 벗어나는 사건사고를 치거나 그저 주변인의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면 가족에게서 외면을 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철학가들과 문장가들이 왜 사람들을 살아갈까를 고찰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것이 우리 인간은 ‘인정을 받기’ 위해서 살아간다.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인정을 받기 위함이다. 어릴 때는 부모에게 칭찬을 들으며 인정을 받고, 학교에서는 공부한 만큼 성적으로 인정을 받고, 부부관계에서 남편으로 아내로 서로에게 인정을 받는 일, 군대에서 고참에게 인정받고, 직장상사에게 오늘 하루 고생했다며 인정받는 일, 의사는 환자에게 인정을 받고, 대통령은 국민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일을 할 때 창조적인 일을 하라는 말을 가끔씩 듣는다. 창조적인 일을 하지만 그 속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창조적인 회사에서 반복적인 일만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반복적인 일을 해도 상사에게 또는 동료에게 인정을 받으면 하루를 잘 보냈다고 하겠지만 대체로 그러지 못하다. 그래서 매일 지옥 같은 하루를 겨우 견디고 있다.


닭을 좀 팔면 어때. 좀 못 배워서 닭요리를 파는 일을 하지만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닭을 먹는다. 닭 요리를 잘해서, 닭을 튀겨서 손님들이 맛있다며 인정을 해주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런 것 따위 손님들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돈을 내며 먹는데도 잘 먹었다며 인사까지 한다.


이 힘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인정받기 위함이다.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자신에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볶음밥을 먹다 인정을 받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내가 만든 볶음밥을 옆에서 오물오물 맛있다며 먹는다. 인정을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 별거 아닌 것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건 가슴이 꽤나 뜨거워지는 일이다.

요즘은 복숭아가 맛있기 때문에 맛있을 때 적극적으로 먹자. 복숭아도 맛있음을 인정받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의 선곡 https://youtu.be/KEI4qSrk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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