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와 만나 뜻밖의 상승작용
장어탕
한 숟가락 떠먹으니 미미하게 장어의 비린 맛이 끝에 맴돌았다. 묘하지만 그 맛이 좋다. 민물생선의 그 미미한 비린 맛은 평소에 잘 맛볼 수 없기 때문에 어쩌다가 먹게 되면 그 맛을 음미한다. 말 그대로 비린내를 음미하게 된다. 이런 미미한 비린 맛은 늘 먹는 음식의 맛에서 벗어났기에 먹을 수 있을 때는 음미한다. '음. 미.' 하는 것이다. 맥주도 벌컥벌컥 마시기보다 음미하는 게 더 맛있게 느껴진다. 기묘하지만 음미 속에는 음식의 맛 그 이외의 것도 맛볼 수 있다.
장어탕은 옆집에서 먹어보라고 준 것이다. 옆집 아주머니는 요리를 잘한다. 식당에나 가야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집에서 직접 한다. 뚝딱 뚝딱 잘 도 한다. 웍도 없는데 탕수육 같은 것도 곧잘 만든다. 육개장도 집에서 재료를 가지고 다 만든다. 장어탕도 장어를 직접 손질해서 장어탕을 만든다. 전문가도 아닌데 이 정도로 비린 맛을 잡아낸다. 옆집 아주머니는 일을 하고 돌아오면 매일 지치지 않고 요리를 한다. 어떤 날은 선지 해장국을 만들어서 한 냄비를 얻어먹기도 했다. 아주머니가 이렇게 국이나 탕 종류의 요리를 주로 하는 이유는 소주를 마시기 위함이다.
매일 소주를 마시는데 빈속에 마실 수 없어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술을 너무 마셔서 병원에서 알코올 중독 초기 증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정신진료도 받아야 했다. 겉으로 보면 멀쩡하지만 아주머니는 속에서부터 점점 피폐해져 갔다.
아주머니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다. 어릴 때부터 똑똑하고 엄마를 위하는 아들이었다. 남편은 굴지의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세 명이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그 시간이 행복이라는 걸 당시에는 잘 느낄 수 없었다. 행복이란 늘 순간이며, 행복은 늘 비슷한 옷을 입고 있다. 추상적이며 손에 들어왔다 싶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빠져나가 있다.
인사성이 밝은 아들은 동네 어른들을 보면 인사를 하고 공부도 잘하고 똘똘한 얼굴로 잘 컸다. 여기까지 읽고 아들이 반전을 할 거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들은 끝까지 저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갑니다. 반전이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거 미리 알려드립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전교에서 1등 아니면 2등이었다. 담임은 과학고에 보내자고 했다. 아주머니는 너무 기뻤다. 아들이 과학고에 가고 싶어 했다. 과학고에 다니려면 집에서 떨어져서 기숙사나 그 근처에서 다녀야 했다. 여기에는 과학고가 없기에 아들을 기숙사에 보내기로 했다. 아들은 고등학교 3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다. 방학에도 자주 집으로 오지 못하고 명절에나 되어야 오곤 했다. 아들은 과학고 내에서도 성적이 좋아서 카이스트에 진학이 되었다.
카이스트에 합격한 소식을 듣고 기뻐하시던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아들은 카이스트에서도 연구에 몰두해서 교수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러는 동안 아들은 입대를 하게 되었다. 충성. 아들이 군대에 갈 때 아주머니는 눈물을 보였다. 아들이 군대에 가고 나니 새삼 집이 텅 빈 것 같았다. 남편의 퇴직도 이제 1, 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아들은 휴가를 받으면 집으로 와서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전했다. 그리고 일이 주 정도 되는 휴가기간에 며칠씩 학교에 가서 필요한 무엇을 잠시 하고 왔다. 휴가에서도 연구에 관한 무엇을 하고 왔다. 아주머니는 그런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아들은 시간이 갈수록 연구하는 게 재미있었다.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한 이후에는 더 학구열에 불타올랐다. 그럴수록 집으로 오는 간격이 길어졌다.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조금씩 아주머니는 아들과 멀어진다는 느낌을 절실하게 받는다. 학교 마지막 학기에 남편은 퇴직을 하고 타지방으로 일을 하러 가면서 집에는 아주머니만 남게 되었다. 아들이 졸업하기만을 기다렸다. 졸업을 하면 집으로 돌아오리라 기다렸다. 하지만 아들은 졸업하면서 미국으로 박사를 따기 위해 연구원으로 가게 되었다. 교수들의 추천을 왕창 받았다.
미국으로 가기 전에 아들은 집으로 와서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를 다녔다. 옆에 아주머니는 웃고 있었지만 깊은 주름이 눈에 띄었다. 아주머니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깜깜한 집의 불을 켜야 한다. 누군가 집에서 반겨주거나 있지 않다. 아주머니가 요리를 해서 나에게 주는 이유는 내가 잘하는 장점을 살려 졸업사진을 가지고 벽시계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집에서 자신을 반겨주는 건 이 시계밖에 없다며 나에게 늘 고맙다며 탕이든 찌개든, 요리를 하면 이렇게 늘 먹으라고 준다. 어떤 요리는 요리를 해서 덜어서 주는 게 아니라 그 요리를 그대로 주는 경우도 있다. 요리를 왕창 해서 아주머니는 먹지 않고 나에게 먹으라고 준다. 그런 요리를 음미하면 짜지 않으면서 짜고, 달지 않은데 달다.
아주머니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가끔 아주머니의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말을 하기도 한다. 이상해졌다느니 대꾸도 안 한다느니. 어느 날은 아주머니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는데 담배냄새가 몸에서 많이 났다. 넓은 공간에서 피우는 것이 아니라 좁고 갇힌 공간에서 재빠르게 피워야만 나는 냄새.
장어탕 잘 먹었습니다.
시래기를 넣었는데도 비린내를 못 잡았어.
아니에요, 제 입에는 아주 좋았어요.
또 요리하면 먹어 줄 거야?
제가 언제 안 먹었던 적이 있어요? 너무 맛있게 잘 먹었는걸요.
아주머니는 언젠가부터 만나면 하던 아들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시래기를 만나 뜻밖의 상승작용을 한 장어탕 덕분에 추운 겨울이 따뜻해졌다. 오늘은 해가 떴지만 냉기에 햇빛이 먹여버린 날이다. 이런 날이 겨울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오전인데도 글씨가 선명하게 쓰일 것 같은 입김이 새하얗게 나오는 날이다. 후 하. 일부러 입김을 내 본적이 언제였더라. 어떤 음식에는 남모를 사정이 있다.
오늘도 자드의 노래 한곡 유레루 오모이 https://youtu.be/nabLCezmv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