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같은 비현실과 비현실적인 현실 이야기
연애 빠진 로맨스
여기 안 외로운 사람 있어?
자영의 이 한 마디가 자영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리고 자영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 투영된, 이 세상에 없을 법한 있는 인물이다.
이 영화는 너무 현실적이다. 그래서 너무 비현실적이다. 이는 2시간 30분이나 되었던 영화 ‘미드나잇 버스’를 볼 때와 비슷하다. 결은 다르지만 느낌은 비슷하다. 미드나잇 버스는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재미라고는 세상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재미가 없는데, 그런데 너무 재미있게 봐버렸다. 그저 보다 보니 인간관계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영화의 태도가 좋다. 영화는 마치 나에게 자신의 어깨를 내밀어주며 그래, 기대고 싶으면 기대도 좋아. 괜찮으니까.라고 해주었다. 너무 하릴없이 흐르는데 그 사이사이에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인간 속에는 ‘나’라고 존재가 있다.
이 ‘연애 빠진 로맨스’가 그렇다. 남녀 연애 이야기인데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 직면에 청춘 남녀의 이야기가 너무 적나라하다. 처한 상황이며, 내뱉는 언어며, 사상, 생각이며 모든 것이 너무 현실적이다. 그래서 너무 비현실적인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한번자영’과 ‘빠구리’가 나누는 대화를 나의 주위는 하지 않는다. 편협한 나의 입장에서 이런 대화는 영화적 허용으로 가능하다고 생각이 들뿐이다. 영화의 대사는 ‘멜로가 체질’의 영화 버전이라는 생각이다. 속에 있는 말을 가까운 사람에게 하지만 이렇듯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언어로 구사하지는 않는다. 영화 속에서 박우리(빠구리)가 함자영(한번자영)과의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을 쓰지만 영화를 보면 그 반대적 개념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소설을 써놓고 그 소설을 바탕으로 세상에 튀어나온 캐릭터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렇다.
로맨스 영화가 대체로 로코물로 빠지는데 이 영화는 그 길을 버리고 현실적인 감정을 다룬다. 영화는 상황보다는 대사가 그들을 대변한다. 마치 오래 전의 비포 선 셋 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두 사람은 만나서 술을 마시며 쓸데없지만 쓸모없지는 않은 이야기를 엄청나게 한다. 이는 곧 이야기를 하려면 만나야 하고 그리고 마주 보고 앉아서 술잔을 기울여야 한다. 요즘 이렇게 하기가 더없이 멀어져서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마음에 든다.
대화는 끊임없이 빠구리 얘기와 소중이 얘기와 직설적인 문제를 논한다. 그 사이에 사랑과 연애는 빠져있다. 영화는 분명 현실적인 감정을 대사로 전부 토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주를 7병이나 마신 자영은 너무 예쁘고 볼 빨간 사춘기의 안드로이드처럼 세상에 없을 법한 인물처럼 보인다. 뭐야 보통 이렇게 마시면 남자건 여자건 찰흙을 벽에 던져 흘러내리는 얼굴인데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어차피 로코가 아닌 연애가 빠진 로맨슨데 개판으로, 더 망가져도 되잖아.
그러는 와중에 자영이 하는 말, 맨 처음 저 위에서 한 말 “여기 안 외로운 사람 있어? 외로우니까 만나는 거지”라는 말을 들으면 현대인에게 너무나 딱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이면 당연히 외롭다. 그런데, 옆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자영이 한 말을 유튜브 ‘1분 과학’의 말을 빌려 다시 해 보면.
과학자들이 환각제를 먹은 사람들의 뇌를 스캔을 하니 뇌가 엄청나게 활성화가 되어서 반짝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거꾸로 특정 부분이 비활성화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부분이 DMN이라는 부분인데 디폴트 디멘션 어쩌고, 이 부분은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활성화가 된다. 나의 과거, 나의 미래, 나의 사랑, 나의 어떤 것, 나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 활성화가 된다. 기능적으로는 우리가 세상을 느낄 때 여러 감각으로 느낀다. 이 감각들이 우리 몸속에서 전기신호로 바뀌어서 뇌 속으로 들어오는데 그 전기신호들이 서로 섞이지 않고 잘 구분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DMN 부분이다. 그런데 환각제를 먹으면 이 DMN이라는 부분이 꺼져 버린다. 그래서 ‘나’라고 하는 부분도 뇌에서 사라지게 된다. 즉 자아가 소멸된다. 그래서 환각제를 먹은 사람들은 기존의 모습에서 벗어난다. 자아가 꺼져 버려서 그렇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이 DMN이라는 부분이 비활성화되어 있다. 어린이도 자아가 꺼진 상태에 가깝다. 어린이들은 나는 뭐가 좋아,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어린이는 자신의 이름을 붙여, 교과니는 이게 좋아, 교과니는 여기에 갈래,라고 한다.
우리가 세상을 볼 때 자아를 통해서 본다. DMN가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렇다. 자아가 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본다. 우리의 원점은 자아다. 원점을 그려놓고 세상을 보기 시작하니까 착한 사람, 나쁜 사람, 좋은 사람 같은 구분을 지어서 보게 된다. 그런데 사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착하거나 나쁘거나 하는 건 우리가 다 만든 것이다. 즉 ‘나’라고 하는 원점에서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그 안에 들어갈 사람들을 구분해서 보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착한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이 사람은 여기에 넣고, 저 사람은 저기에 넣어서 구분을 한다. 그리고 나의 잣대로 이 사람은 좀 착한 사람, 덜 착한 사람으로 지정해버린다.
그런데 DMN이 비활성화가 되면 그런 구분이 없어진다. 즉 자아가 없어지면 이런 잣대가 소멸한다. 이는 사람에게만 경계를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 물건, 자연으로 확대된다. 평소 같지 않게 하늘이 너어어어어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자아가 살아 있으면 하늘이나 꽃이 제아무리 많아도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늘을 보면서 막 울고, 눈물을 흘리며 아름답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에르메스를 보면 감동을 한다. 하지만 DMN이 비활성화가 되면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사라진다. 선입견이 없어지기 때문에 하늘이 말도 못 할 정도로 감동으로 다가온다.
환각제를 하지 않아도 비활성화되어 있는 어린이를 보자. 어린이는 선입견이 없고 욕심이 없고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냥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하다. 하루하루 모든 것이 신기하고 질문이 많다. 왜 달이 나를 계속 따라오는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부른 배를 부여잡고 있는 엄마와 형아 사진을 보며 왜 나는 잡아먹었냐면서 울고 불고 난리를 친다. DMN가 비활성화가 되어 있어서 그렇다.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런데, 그런데
어린이를 벗어나 찌든 생활을 하는 어른이라도 비활성화되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게 바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영이 술에 취해, 하는 대사에 접근할 수 있다.
진짜 사랑이라는 건 나보다 상대방을 더 위하고 중요하게 생각할 때를 말한다. 진짜 사랑이라는 건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을 진짜 사랑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엄마는 자신보다 아이가 훨씬 더 소중하고 아이에게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엄마와 아이의 사랑에는 엄마라는 자신은 개입하지 않고 아이만을 생각하는 사랑을 하게 된다. 이게 가능하다. 아이가 기뻐하면 내가 기쁘고, 아이가 슬퍼하면 내가 슬프고, 심지어 말도 안 되지만 아이가 아프면 내가 아프기도 한다. 즉 엄마의 자아, ‘나’라는 영역이 아이에게 확장이 된 것이다. 엄마들이 아이를 낳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하는데, 이는 엄마의 세상이 그 아이까지 확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인끼리 이런 사랑이 가능하지 않는다. 예쁘고 착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지만 그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쁘고 착한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내 잣대로 구분해서 카테고리에 넣은 사랑인 것이다. 그래서 그 이미지가 깨지면 그 사람이 싫증 나고 미워지고 심지어는 헤어지기도 한다.
아마 똘아이 같은 영화 속 자영은 이미 첫사랑을 사랑하면서 배신을 두 번이나 당하며 이 모든 것을 유전자처럼 습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이 빠진 그 자리에 활활 타오르는 관계만으로도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안 외로운 사람이 어딨냐고 자영이 술에 취해 말한다. 인간이란 한 이불에 같이 들어도 결국 잠은 혼자 들어야 하는 외로운 존재다. 혼자서는 외롭다. 당연하지만. 그러나 옆에 사랑하는 이가 있어도 외롭다면 이는 인간이 풀어야 할 숙명이기도 하다.
오늘의 선곡은 너무나 좋은 노래, 우효의 청춘 https://youtu.be/wrmyqKRGW-0
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나 너무 좋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