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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05. 2020

첨밀밀

영화를 소설로



그랬다 소군과 이교는 힘겹게 몇 겹에 걸쳐 입었던 옷을 더 힘겹게 벗어서 몸을 나눈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것에 실은 사랑은 없다. 소군과 이교는 외로웠던 것이다. 외로움에 몸서리 처질 정도로 처절하고 절박한 하루를 매일 보냈다. 두 사람에게 진실한 사랑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립되는 것에 겁이 났던 소군과 이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키스를 하고 사랑을 나눈다. 자신을 속였다는 걸 알면서도 이교 옆에 머무르고 싶었던 소군과 애인이 있는 그와 몸을 나누는 것에 오는 죄책감을 생각하기에는 벗어나고픈 외로움이 더 컸다. 잘 나오지 않는 수도와 겨우 들어오는 50촉 백열등과 한 사람 다리 뻗어 잘 수 있는 공간에서의 매일을 맞이하고 소멸하는 것에서 오는 공멸함과 우물 밑으로 떨어지는 결락감이 해서는 안 된다는 이성과 도덕 그 위에 있었다. 소군과 이교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두 사람은 점점 더 가까이 지낸다. 황인숙 시인이 그랬지만 인생이란 고단하지 않으면 구차한 것이다. 두 사람은 구차해지지 않기 위해 절박한 고단함을 택했다. 무너질 듯하면서도 서로를 지탱해주는 건 앞에 있는 실체였다. 멀리 있는 내 사랑을 떠올리며 매일 구차해지기는 싫었던 소군과 여자들이 꺼려하는 일을 하면서까지 손에 잡힐지 모를 그 무엇인가를 향해 구차해지지 않으려는 이교. 두 사람의 불륜적 사랑은 절박하면서 쓸쓸하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추악하고 아름다워서 애틋하고 눈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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