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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03. 2022

좋아하는 시간 오후 5시

바닷가에서 3

바닷가에서 3


좋아하는 시간에 바닷가에 나와서 서 있으면 기분이 황홀하다. 좋아하는 시간 오후 다섯 시. 바닷가에 오후 다섯 시가 서서히 밀려오는 게 느껴지면 바다와 나는 시가 된다. 바다에 오후 다섯 시가 내려앉으면 이제 곧 따뜻한 어둠이 펼쳐진다.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시간, 바닷가 오후 다섯 시. 오후 다섯 시는 금요일 같은 시간이다. 바닷가에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콜먼 호킨스가 연주를 한다. 바디 & 소울이 수평선을 향해 간다.


오후 다섯 시를 기다렸다가 등대로 오른다. 오후 다섯 시가 되면 하늘에서는 매직 아워가 드러나고 빛은 수십만 개의 포자가 되어 허공에서 무화된다. 지정할 수 없는 색, 오후 다섯 시는 거짓말처럼 눈앞에 그림이 된다. 그건 생과 사, 소멸하는 것과 생성되는 것의 동시 존재의 시간이다.


오후 다섯 시.

바닷가의 오후 다섯 시.


누군가 옆에서 담배를 피운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담배는 생을 단축시키는 일이잖아요”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말했다. “매일 살아가는 게 생을 단축시키는 짓이야” 쓰으, 후. 담배연기가 매직 아워의 화면을 부옇게 만들었다가 사라졌다. 이것이 혁명이야,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혁명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혁명이 이루어지면 생은 아름답다. 생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지만 ‘생‘이 아름답다면 ‘사’ 역시 해 볼만해.


좀 더 추상적이었으면 좋겠어. ‘생과 사’는 너무 촘촘하고 계획적이거든. 생과 사는 오후 다섯 시 같아졌으면 좋으련만. 좀 더 은유적으로, 바닷가의 오후 다섯 시의 빛들이 수십만 개의 메타포로 비처럼 바다에 쏟아졌으면. 그런 오후 다섯 시가 되었으면. 나도 모르게 콜먼 호킨스의 음악에 몸을 흔든다.


바닷가에서 오후 다섯 시가 되면 매직 아워 너머에 있는 사람을 생각한다. 은유적인 사람, 은유적인 얼굴을 하고 은유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그 사람을 생각하면 심장은 펌프질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사람을 생각하자. 지구에서 벗어난 곳은 그 사람의 오후 다섯 시. 나는 다리 사이에서 태어나기도 전의 아름다운 오후 다섯 시를 만난다.


안녕,


안녕.


오후 다섯 시의 인사에 나는 클리셰 적인 인사를 했다. 안녕 보다 더 괜찮은 인사는 없을까. 좀 더 친밀하고 내제적인 인사말이야.


담배를 피우던 누군가를 나는 불렀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누군가의 얼굴에 눈과 코가 없다. 이빨이 없는 퀭한 구멍으로 담배연기가 후 나올 뿐이다. 이것이 혁명이야. 모든 것이 제자리일 뿐이다. 해가 지고 나는 바닷가에서 집으로 온다. 등대를 빠져나온다.


늦은 밤.


바다와 하늘의 색이 구분이 가지 않는다. 따각따각 따각따각하는 소리가 들린다. 수십만 개의 빛의 메타포가 바다로 들어가 조개가 되어 울고 있다. 수천수만의 조개가 아가리를 버리고 달을 보며 울고 있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다. 조개는 생과 사를 노래한다. 따각따각. 조개는 콜먼 호킨스의 음악을 연주한다. 따각 따 각. 조개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잠이 든다. 꿈속에서 그 사람의 오후 다섯 시를 생각한다.



https://youtu.be/zUFg6Hvlj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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