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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16. 2022

바람이 불어오면 20

소설


20.


 한참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목이 아팠다. 무엇보다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져서 추웠다. 눈썹도 촉촉해졌다. 나는 다시 걸음을 걸었다. 어딘가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작정 걸었다. 눈길을 걷는다는 건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운동화의 갈라진 틈으로 눈이 들어와 녹아서 발가락도 차가웠다. 아침이 오면 사람들은 눈으로 덮인 길을 바삐 걸으려고 조심하는 아이러니 같은 모습들이 보일 것이다. 야상의 옷깃을 목까지 올리며 어깨를 움츠리고 천천히 걸었다. 길 위에 내 발자국을 만들어 내면서, 나는 앞에 깔린 바닥을 보면서 오랫동안 걸었다. 하얗게 변해버린 세상을 보았다. 알록달록하던 풍경이 덮여 하나의 색으로 통일이 되었다. 그렇게 바뀐 세상을 보며 앞으로 그저 걷기만 했다. 촛불을 생각했다. 촛불을 생각했는데 김춘수의 촛불이 또 생각났다. 양초에 불을 붙이면 모든 것이 보인다. 면경의 유리알도 보이고, 의롱의 나전도 보이고 어린것들의 눈망울과 입언저리까지 모두 살아난다. 촛불은 반경 내에 있는 것들의 윤곽을 살려낸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윤곽도 있다. 그 윤곽은 무엇일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며 걸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눈이고, 생각은 촛불이었다. 김춘수의 시는 모든 것이 지적이다.


 나는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어디까지 걸어온 걸까.


 문득 새벽의 정적을 깨트리는 자동차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고요한 음영만이 가득했다. 눈이 내리는 아주 미세한 소리만 씨락 씨락 들렸다. 아직 생존해 있는 벌레들에게 소리를 들려주듯 눈은 고요의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시계를 보니 자취방에서 새벽 세 시쯤에 나와서 세 시간 정도를 걸었다. 돈도 얼마 없었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걷기만 했다. 자취촌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버렸다. 세 시간이나 걷다니,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어디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마도 자취촌의 뒤편에 있는 작은 동산으로 올라와 그 뒤로 보이는 산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었나 보다. 건물이라고는 한 채도 보이지 않았고 자동차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고 산책을 하거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전혀 볼 수 없었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서 걸었다. 오전 7시가 가까워져 오니 날은 서서히 밝아왔지만 하늘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을 하고 눈을 뿌리고 있었다. 새벽에 내리는 눈보다 곱절은 많이 내렸다.


 나는 또 얼마만큼 걸었을까. 왔던 길을 분명 뒤돌아서 걸었지만 모르는 길로 자꾸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지나온 발자국은 새롭게 내린 눈이 모든 것을 하얀 원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도대체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 나는. 길을 찾을 수 없었지만 조바심이 나거나 겁이 났던 것은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느껴지는 마음의 안정이 신기하다면 신기했다. 나는 본디부터 겁이 많은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계속, 어딘가를 향해 계속 걸었다. 마치 행군하는 군인처럼.


 어쩌면 새로운 풍경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른다. 늘 가는 곳, 손을 뻗으면 닿는 모든 것 안에서 나는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눈에 보이는 새로운 모습을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새하얀 풍경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걷다 보면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분명 그렇게 생각을 하며 모르는 길로 계속 걸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를 만큼 걸었다. 눈은 한 시간 전보다 압도적으로 더 내렸고 밟으면 ‘뽀드득’에서 ‘뿍뿍’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밟는 순간, 앞의 과거는 말살시키고 눈을 밟는 찰나를 확대시켜서 즐기게 만들었다.


 뽀득, 푹푹, 뽀드득.


 푹푹 듣기 좋은 소리였다. 겨울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듣기 좋은 소리는 세상에 몇 없다. 자취촌 근처에도 이렇게 큰 산이 있고 그 속에는 풍경을 보며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은 바다니, 산이니 하는 자연이라는 무제한의 것에는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 길은 전혀 사람이 걸어 다닌 흔적이 없어서 인간이 생활하는 반경이 생각 밖의 일처럼 훨씬 크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계속 걸었다. 걷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나는 길을 잃을 것이다. 그럼에도 앞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계속 걸었다. 눈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펑펑 내렸다. 두려움도 없었다. 방향 감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오솔길로 보이는 길을 따라 눈을 밟으며 걸었다. 시간이 아침 8시를 넘기고 있었다. 새벽 3시에 나와서 나는 다섯 시간을 걸었다.


 세상은 온통 새하얀 눈밭이었다. 발가락이 무척 시리고 너무 아팠다. 발가락을 잘라내는 동사 환자들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제 오솔길도 끝이 보이려고 했다.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그저 산이었다. 나무들이 울창하게 눈을 맞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숲이었다. 오솔길의 끝에 다다르니 삼 층 짜리 종교 건물이 하나 덩그러니 보였다. 하지만 외관상으로 무슨 종교인지는 알 수 없었다. 건물 앞에는 비석이 하나 있었고 비석은 한문으로 쓰여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눈은 더 거세게 내렸다. 거수경례하듯 차광막을 만들었다. 보통 때는 그것이 차광막이었지만 지금은 눈을 막는 역할을 했다. 눈은 금세 손등에 쌓였다. 눈이 손등에 떨어져 녹을 새도 없이 쌓여갔다. 손은 금방 얼어버렸고 나는 이 산속에 하나밖에 없는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문은 굉장히 컸고 깔끔했다. 요란한 무늬 따위는 없었다. 문은 말 그대로 더도 덜도 아닌 ‘문’이었다. 문은 까다롭게 문을 만드는 전문가에 의해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문 같았다. 손잡이가 없었다. 손잡이가 없었지만 문은 그야말로 ‘문’다웠다.


 나는 건물 앞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나무들은 모두 하얀색의 눈옷을 입고 있었고 가끔 새가 날아가면서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크고 작은 나무에 내려앉은 눈은 관객의 모습으로 나를 에웠고 관람하는 느낌을 받았다. 고요의 밀도가 굉장했고 눈 내리는 소리만 현실이 아닌 듯 들렸다. 낡은 스니커즈 운동화의 앞부분의 갈라진 틈으로 녹아들어 온 눈에 발가락들은 아우성이었다. 열 개 중에 두세 개는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동상. 잘리는 발가락. 지팡이.


 환영처럼 이미지가 스쳐 지나갔다. 눈이 내리는 동시에 세상은 거대한 냉동고처럼 변하려고 그러는지 몰려오는 추위가 대단했다. 내 몸이 추위에 대한 면역이 떨어져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도 손이 시리고 입에 양손을 모으고 후후 불어도 전혀 열기가 손가락에 전해지지 않았다. 공기와 맞닿아있는 얼굴도 감각이 사라졌고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은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입김의 몇 배나 되었다. 코로 숨을 쉬는 대도 그 연기가 콧구멍을 통해서 용의 입김처럼 흘러나왔다. 건물에는 분명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삼 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의 꼭대기에는 붉은 벽돌로 지은 지붕이 있었고 –모양은 이상하지만- 굴뚝같은 것이 보였는데 땔감을 태우는지 계속 연기가 올라갔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굴뚝의 연기에 닿아서 녹아 빗물이 되었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가 닿아서 달달 거리는 소리가 귓가의 모든 정적을 깨트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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