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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18. 2022

바람이 불어오면 22

소설

22.


 그녀의 내부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바닥은 필요한 만큼 따뜻했다. 오로지 온기가 전해주는 따뜻한 안온감만 있었다. 무뚝뚝한 나에게도 여러 가지 감정이 있다. 지금은 그녀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에 눈물이 흐르는지도 모른다. 어이없게 행복감마저 들었다. 별것도 아닌 감정일 뿐인데 나는 왜 외면하고 살았을까. 어머니 때문일까. 아버지 때문일까. 어머니를 생각하면 슬프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렇게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고 나도 어머니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어쩔 수 없는 혈연으로 알 수 없게 매듭지어진 관계처럼 느껴질 뿐이다. 어머니는 나를 위해 밥을 하고 옷을 입히고 집안일을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으로 다가오는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했다.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는 자본가다. 내 아버지가 카프카의 아버지만큼 자본론 적이지는 않다. 나 역시 카프카만큼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고 카프카처럼 모든 면에 재능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재능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인간이었다. 카프카는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뭐든 다 했다. 당시에 최고의 직업은 보험회사를 다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그것을 요구했고 카프카는 해냈다. 자본론에 의해서 움직이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하면 카프카는 원하는 것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카프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자신의 글을 누군가 읽어주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친구들과 함께 글을 공유하고 나누는 것이면 그만이었다. 그러기 위해 카프카는 글을 쓰는 행위에 몰두했다. 자신의 첫 소설을 아버지에게 제일 먼저 들고 갔다. 아버지는 카프카의 소설을 받아 들고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왜 한 것이냐는 눈빛으로, 저기 테이블 위에 올려놔라,라고 한 마디를 했을 뿐이다. 딱한 카프카, 불쌍한 카프카, 나의 카프카.


 나의 아버지는 내가 건축과에 입학을 했을 때 건축일이라는 것은 앞으로도 줄어들지는 모르나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내 미래에 대해서 여러 말을 늘어놓았다. 아버지는 집에 이만큼의 돈을 가져다주고는 그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는 분위기가 강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와도 나에게도 다정하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니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어떤 식으로 묶여있어서 같이 지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꽤 먼 사이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내가 없어서 조금은 보고 싶어 할까. 아니면 귀찮은 것이 없어져서 아버지가 회사에서 들어오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낼까. 어떻게 지내던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바닥에 대고 있는 얼굴의 반대편 쪽에 또 다른 온기가 흘러내렸다. 바닥에 대고 있는 온기가 고요한 온기라고 한다면 반대쪽의 볼에 닿은 소란스럽지는 않지만 움직이는 온기였다. 온기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바닥의 온기는 뺨 위로 올라왔다.


 눈을 떴다.


 나는 바닥에 누워 있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눈물을 많이 흘렸던 모양이었다. 눈물과 명순응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기도를 하고 있던 여자가 내 볼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당신은 길을 잃었군요. 이곳은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에요’


 나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일어나려고 했다.


 ‘당신은 눈이 내리는 곳을 돌아다니느라 상당히 얼어있었군요. 그대로 좀 누워서 몸을 따뜻하게 해요. 올해 들어서 첫눈에 폭설이라고 해요. 아버지는 저녁에나 오실 거예요. 그때까진 편하게 계세요. 여긴 아무도 찾아오진 못해요’


 나는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분명 말을 하고 있었지만 입이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눈동자 나를 향해 있었다. 아이의 눈동자 같았다. 그녀가 말하는 목소리는 어딘가 부정확한 감이 있는 음의 울림이었다. 부정확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귀에 익숙한 소리처럼 들렸다. 입을 벌리지 않고 나에게 소리를 전달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의 생각들이 몇 가지의 모양으로 변형되고 갈라졌지만 결국 하나의 형태를 취했다.


 “아가씨는 말을 할 줄 모르나요?”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내가 하는 말도 왜인지 부정확한 목소리 같았다. 마치 녹음한 내 목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네, 맞아요. 전 말을 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당신에게 내가 하는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어요. 당신은 저와 대화를 할 수 있어요. 전 누구나 다 대화가 가능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도 지금 신기해요. 당신을 보는 순간 당신은 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당신은 평소대로 말을 하면 돼요’


 나는 정말 현실과 비현실의 임계점에 서있는 것일까.


 ‘당신은 마음속의 방향이 갈팡질팡하고 있군요. 그건 사람에게 향한 것일 수도 있고 이물질에 관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 향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녀가 입을 움직이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 이곳에 들어오는 순간 마음이 평안해지고 다른 감정들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른 감정들이라고 하면, 불온한 것들? 미저러블 한 것들에 대해서는 차단이 되었어요. 왜 그런 것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건 당신이 주체아로서 당신을 느끼고 있어서이기 때문이에요. 이곳에 주체아라고 한다면 주체인 당신은 당신을 바로 본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놓치고 있는데 말이에요’


 “그건 하이데거 아닙니까?” 내 물음에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맞다, 아니다,를 정확하게 인정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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