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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4. 2022

옛날 햄버거와 버드 와이저



옛날 햄버거에 치즈를 하나 더 넣어서 먹으면 아주 맛있다. 거기에 버드와이저 한 모금이면 아아 행복하다.  선거가 끝나고 한쪽에서는 모든 것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과 또 다른 한쪽에서는 다 얻은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떻든 사람들은 오늘내일을 또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한다.


러시아에서도 푸틴 때문에 국가 부도의 불안함이 극에 달해서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다. 자신의 나라를 등지고, 고국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만 할까 싶다. 어떻든 오늘을 살아낼 것이다.


인간은 보통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모두의 행복을 바란다. 행복한 것이 마땅하겠지만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 모두가 행복한 것만큼 잔인한 것은 없다. 누군가 행복하다면 누군가는 지하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건 그 누구도 행복하지 말자고 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와 같은 말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은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말하기 전에 누구의 책임이라고, 어느 조직, 어느 단체, 어느 부서에서 책임이 있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게 낫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건 이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모호하고 불가능하다.


머릿속에서 행복을 버리면 어떻게 될까. 반드시 행복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꼭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행복이라는 그 찰나의 순간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수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원래 인간의 삶이 그러기 위해서 보내는 거야,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꼭 그래야 할까. 그러니까, 썩 행복하지 않은 많은 시간들, 덜 불행한 시간을 행복이라 여기면 행복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간의, 또는 어느 정도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 노력 중에 하나는 내가 매일매일 생활하면서 몸과 정신으로 받는 스트레스하고 내가 겪는 근본적인 불행은 분리해야 한다. 이것을 동일시하면 행복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불행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근본적인 불행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불행은 전부 제각각이고 아주 세세하고 깊고 끈질기다. 어떤 사람에게는 유전자를 타고 들어온 병일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에게는 떠안은 가족의 빚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비대한 몸 때문에 비관적일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받는 스트레스는 이 불행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에 따로 떨어트려 놓아야 한다.


나는 일 때문에 너무 힘들어.라고 생각이 된다면 그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자. 이 일을 좋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매달릴 수 없고 힘들지 않을 수 없다. 그걸 인간관계로 옮겨오면 비슷하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관계는 힘들어진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남녀가 만나서 합일되는 것이 힘들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전쟁 같은 사랑이 매일 이루어진다.


그저 칭찬만 듣고 내가 바라는 대로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는 곳이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시간을 사는 곳이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그 사람을 사고, 그 사람의 시간을 사려면 역시 힘들게 자본을 긁어모아야 한다. 인간관계가 힘들지 않다면 그건 그저 상하관계 같은 어려운 관계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 그간 인간이 어려운 일들을 당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8에서도 지구에 3차 대전에 일어나 핵폭탄이 터진 후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고, 10년 전부터 월드워 Z 같은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인류를 덮치는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다. 보면 암울하고 디스토피아적이며 암담한 현실을 말하고 있다. 비관적인 결말도 있고 낙관적인 결말도 있다. 뭐가 됐든 인간은 그 안에서 하루를 견디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전쟁과 바이러스가 같이 인류를 위협하는 이야기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건 너무나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현실에서 바이러스와 전쟁이 동시에 일어났다. 게다가 한쪽에서는 거대한 산불이 9일이나 꺼지지 않고 숲을 전부 불태웠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하루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견디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주위를 둘러보면 보이는 아이들 때문이다. 나와 상관없는 아이들 또는 나와 관계가 있는 아이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불행과 스트레스를 동일시해서 살아가는 순간 하루는 버티기 힘들어진다.


내 친구 중 한 놈이 아이에게 완벽한 아빠의 모습이 아니라 건물주 때문에 너무나 지질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서 눈물을 보였다. 아이는 완벽한 아빠의 모습을 바라는 게 아니다. 지질하고 잠 많고 배가 나와도, 그래서 건물주에게 굽신거릴지라도 옆에 있을 수 있는 아빠이면 족하다. 돈 걷고 다니느라 바빠서 아이들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아빠는 아이에게 필요치 않다.


전쟁과 바이러스와 자연재해 속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우리가 흔히 바라는 영웅일지 모른다. 잘 견뎌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를 조금이라도 잘 견디려면 불행과 스트레스를 분리해야 한다.


분리를 하고 매일 받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 중에 좋은 것은 매일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인간은 매일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한 끼 먹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 순간을 만끽하자. 그저 한 끼를 때운다 식으로 식사를 하지 말고 한 끼 정도는 제대로 차려서 먹거나, 식당에 가서 바로 나온 뜨겁고 맛있는 음식을 먹자. 그 정도는 매일 할 수 있다. 매일 먹어야 하니까.


나는 옛날 햄버거와 버드와이저를 함께 먹는 걸 좋아한다. 행복하니까 스트레스도 풀린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다. 그리고 음악을 듣자. 오늘 들을 음악은 바로 토르의 여친, 나탈리 포트만이 광고에서 큰 소리로 부르는, 제니스 조플린의 Piece Of My Heart https://youtu.be/3SL0oRcD7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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