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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30. 2022

볶음밥 이야기

1

 

 요즘은 노인이 되면 노인에게 무엇인가 부탁을 하는 것도, 맡기는 것도 망설이게 된다. 아이를 며칠 동안 맡겼더니 달라는 대로 아이스크림을 먹인다던가, 가스밸브 잠그는 것을 내내 잊어버려 집에 불아 날 뻔했다던가, 그렇게 조심하라고 당부했는데 낯선 전화를 받고 넘어가 버린다던가, 다단계 화장품 사무실에 친구 따라가서 왕창 구입을 한다던가.


 언젠가부터 노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계가 생기게 되었다. 노인에게 귀를 파달라고 하는 사람도 요즘은 거의 볼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이럴 때에는 나이가 많은 외할머니가 귀를 파는 게 제일 시원했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비스듬히 누워 있으면 외할머니가 현란한 손놀림으로 부드럽게 귀를 파주었다. 잠이 막 들려고 하면 몸을 돌려라고 했다. 다른 쪽 귀를 파야 한다고.


 귀이개로 귀를 판 다음에는 하얀 너구리 털 같은 솜털이 달린 귀이개로 후반부 작업을 한다. 그때는 속수무책으로 수마에게 끌려가고 만다.


 귀를 파주는 추억을 떠올리니 초등학교 때 친구의 어머니가 귀를 파주던 때가 생각난다. 친구의 어머니는 보통의 어머니들보다 날씬하고 어렸다. 누나라고 해도 될 만큼 어려 보였는데 무엇보다 예뻤다. 친구의 어머니는 볶음밥을 아주 맛있게 해 주었다.


 도대체 볶음밥에 무엇을 넣었는지 몰라도 너무 맛있었다. 아줌마가 해주는 볶음밥을 먹기 위해 자주 놀러 갔다. 볶음밥이라고 해봐야 우리 집에서 우리 엄마가 해주는 볶음밥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아주 맛있었다. 아줌마의 볶음밥은 마치 중국집 볶음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아줌마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훨씬 젊고 예뻐서 가끔 학교에 오면 선생님들도, 다른 학부형들도 수군거렸다. 사람들은 평균에서 벗어나면- 평균보다 월등하거나 훨씬 떨어지게 되면 이상하게 보고 호러블 하게 분위기를 이끌고 가는 경향이 짙다.


 아줌마는 교복을 입어도 될 만큼 날씬해서 아줌마가 아니라 사촌누나 같았다. 아줌마는 시력이 좋지 않아 렌즈를 꼈는데 렌즈에서 푸른빛이 돌아서 아줌마의 얼굴은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 요즘으로 치자면 키도 커서 지지 하디드 같은 얼굴이었다.


 불살은 통통한데 팔다리는 길쭉길쭉 날씬했다. 입고 있는 옷도 다른 어머니들이 입는 옷 같지 않았다. 다운타운 중심가에 있는 고급 의상실에서 맞춤으로 재단한 의상이거나 준코 시마다와 지미 추를 주로 입었다. 그게 몹시 잘 어울렸다.


 만약 저 옷을 우리 어머니가 입었다면, 까지만 생각하고 그다음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친구와 볶음밥을 맛있게 먹고 나면 또 먹고 싶으면 놀러 아,라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손길은 부드럽다 못해 일종의 중독이 손바닥에 도사리고 있었다.


 친구의 이름은 준범이다. 5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6학년 때에도 같은 반이 되었다. 5학년 때에는 어울리지 못하다가 6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준범이와 나만 같은 반이 되었다. 준범이와 나는 잘 맞았다. 그렇지 않을 것 같았는데 꽤나 어울렸다.


 준범이는 말이 별로 없고 운동장에서 뛰어 놀지도 않았다. 주로 공책에 그림을 그리며 앉아 있었는데 그림은 알 수 없는 그림들이 많았다. 준범이는 심장 수술을 한 번 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 마음껏 어울리지 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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