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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19. 2022

라디오를 켜봐요 10

소설


10.


 “글쎄요. 그것도 저는 잘 몰라요. 저는 새벽 몇 시간만 일을 하거든요. 저는 피곤하답니다, 손님. 오후에는 늘 잠들어 있는 상태라 자세한 건 잘 알지 못해요. 왜요? 사장님 불러 드려요?”라고 발랄한 여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할 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사람은 얼굴이 길고 앞니가 커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저와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여자와 사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저를 사랑했어요 저도 물론 그녀를 사랑했거든요 그녀는 늘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나를 떠나갔어요 저는 아직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라며 남자는 들어오자마자 카운터의 여자에게 말을 쏟아냈다. 여자는 다 알았다는 듯이 손을 내밀었고 남자는 말을 하면서 주머니에서 천오백 원을 건네주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메모지와 볼펜과 티켓을 주고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그것들을 전부 받아 들고 대기실에서 페팅을 즐기는 남녀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방금 전의 자신의 이야기를 똑같이 쏟아냈다.


 “일주일에 4일은 여기 오는 사람이에요. 단골이에요. 저 사람만의 인사법이죠. 악의는 없어요.”라고 발랄한 여자가 말했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새벽에도 다양한 세계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저 한 명인데 얼마인가요?”


 “얼마 있어요? 잔돈으로.”


 나는 여자의 말에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에는 택시비를 계산하고 남은 돈이 있었는데 천 원짜리 한 장과 오백 원짜리 동전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여자에게 보여주며 카드로 계산을 하겠다고 했다. 여자는 손바닥을 보이며 그 돈을 달라고 했다.


 “네?”


 “여기 카드가 안 되거든요. 그 돈이면 됩니다. 노래 듣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죠.”라며 내 손에 있는 천오백 원을 들고 갔다. 카운터를 보니 카드를 긁는 기계는 보이지 않았다. 발랄한 여자는 볼펜과 메모지 한 장과 티켓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그것을 들고 뭐? 라는 표정을 지으니 신청곡이요, 라는 말을 하며 의자에 발랄한 여자는 몸은 파묻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대학교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곳곳에 음악 감상실이 있었다. 대학교 앞에는 음악 감상실뿐만 아니라 영상을 같이 보여주는 곳도 많았다. 그중에서 ‘워터 덕’이라는 음악 감상실은 나의 아지트였다.


 “워터 덕이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물오리야, 물오리라고 하면 촌스러우니까 그저 워터 덕이라고 주인이 지은 거지.”


 대학생 아르바이트 형이 해준 말이었다. 언제나 담배연기로 뿌연 공기가 가득했고 냄새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는 입장료만으로 음악을 실컷 듣고,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었고 음료도 마시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기에 카페나 극장보다는 대학생들이 많이 찾았다.


 워터 덕에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이미 성인의 물을 마셔버린 고등학생들도 가득했는데 나 역시 고등학생 때부터 워터 덕에 들락거렸다. 나와 친구들은 워터 덕에서 가끔씩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일요일 오전에 그곳을 찾기도 했다. 그날은 영화 ‘졸업’을 했고 우리는 몽땅 졸업의 마지막 장면을 좋아했기 때문에 몇 번을 같이 봤다. 졸업의 마지막 장면은 현실 파괴의 동기부여가 되었고 이상주의자였던 우리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영화였다. 동시에 영화의 끝에서 우리는 미래의 불안을 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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