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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2. 2022

라디오를 켜봐요 13

소설


13.


  집으로 올라와서 불을 켠 시간이 10시였다. 라디오를 켜니 블랙 사바스의 전쟁광(워 피그스)이 흘러나왔다. 오지 오스본 같은 순수한 인간이 이렇게 어두운 음악을 할 줄 안다. 사라와 나는 페팅을 나누고 근처의 식당에서 게맛살 명란 파스타를 먹고 집으로 왔다.


 내일부터 바빠질 거라고 그녀가 말했다. 내일 받아 올 네 군데 업체의 디자인 도안을 이번 주 내에 다 해야 한다고 했다. 어쩌면 야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옆에 같이 있어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야근을 하는 중간중간에 아마도 페팅을 할 것이다. 연장근무를 하면서 그 정도는 보너스 같은 것이다.


  나는 집으로 와서 창문으로 보이는 건물을 바라보았다. 건물은 일 년 전이나 두 달 전이나 전혀 변함이 없었다. 뒷모습이라서 그랬을까. 손을 씻고 집을 나서서 건물 앞으로 갔다. 런던 팝의 네온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어제는 몰랐지만 런던 팝이라는 글자가 뒤집어져 있었다. 개성일까.     



  계단을 타고 올랐다. 이층으로 가는 입구는 영락없이 몇 년 동안 건물에 그 누구도 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달큼하고 시큼한 냄새가 계단에는 존재했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그 냄새를 맡았다. 평소에 맡을 수 없는 냄새였다. 어딘가에서 한 번 맡아본 냄새지만 어디서 맡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3층으로 올라가니 노랫소리가 미미하게 흘러나왔다. 문을 여는 순간 노랫소리가 대공포 소리로 바뀌어서 내 몸을 두드렸다. 어제의 그 발랄한 여자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여전히 껌을 어금니로 씹고 있었고 아주 짧은 반바지에 스타킹을 신고 있었는데 스타킹의 색이 왼쪽 오른쪽이 달랐다.


 스타킹의 색을 말하자면 어렵다. 퍼너먼트 블루 딥, 오아시스 옐로 칵테일 같은 색이다. 어떻든 총천연색의 컬러가 두 다리에 퍼져 있었다. 나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천오백 원을 꺼내 건넸다. 예의 발랄한 여자는 껌을 씹으며 오늘도 오셨네요, 라며 티켓과 볼펜과 메모지를 건네주었다.


 대기실로 가서 자리에 앉으니 티켓을 보여 달라고 누군가 말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카운터에서 껌을 겁나게 씹던 발랄한 아르바이트 여자였다. 그 발랄한 여자가 내게 주었던 티켓을 다시 여자에게 주었더니 “잠시 대기”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5분 후에 킨 사이다에 빨대를 꽂아서 주었다.


 킨 사이다 병은 일반 사이다 병보다 훨씬 작았다. 어, 하며 무엇인가를 질문하려 했지만 발랄한 여자는 자신의 일은 다 끝났다며 껌을 씹으며 카운터 속의 자기 세계로 숨어 버렸다. 대기실에는 어제보다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사이다를 마시며 메모지에 신청곡을 기입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오다니. 나도 신청곡을 기입했다.


  [Keane- Somewhere Only We Know, Janis Joplin- Summertime]라고 적고 메모지를 가지고 음악 감상실 안으로 들어갔다. 극장처럼 안은 컴컴했다. 천장에 동전 크기만 한 다운라이트가 빛을 내고 있었고 의자는 극장의 의자보다 더 컸으며 몸이 의자에 파묻힐 정도였다. 사람들이 새벽인데도 많았다. 요즘에도 음악 감상실이 이렇게 장사가 잘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더더군다나 이 죽어버린 건물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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