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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3. 2022

라디오를 켜봐요 14

소설


14.


  아, 어쩌면 집으로 가는 교통편을 놓치거나 돈이 없거나, 또는 적은 비용으로 남녀가 같이 있고 싶은 곳을 찾아서 이곳으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이나 뮤직비디오는 컴퓨터로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고 이어폰으로도 고성능 음향으로 들을 수 있는데 이런 곳을 찾아서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음악 감상실에 사람들이 꽉 차면 1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고 이미 20명 정도가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사람들은 산발적으로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야 했다. 음악 감상실에서는 CCR의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CCR은 한 번도 그들의 이름을 저렇게 줄여서 말한 적은 없었지만 우리는 대체로 그냥 CCR이라 불렀다. 감상실을 둘러보며 내가 앉을 만한 자리를 찾는데 한 줄에 딱 한 명이 앉아 있는 줄이 있어서 그 줄에 가서 한 의자에 앉았다. 푹신했다. 푹 파묻혔다.


 대부분의 줄에는 사람들이 커플 단위로 있거나 다리를 다른 의자에 걸쳐 놓은 채 앉아 있었다. 자리를 잡은 다음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 디제이 박스에 메모지를 밀어 넣었다. 디제이 박스는 유리 벽 좌측 밑에 예전의 극장 티켓 판매대처럼 반달 모양의 구멍이 있고 그 속에 신청곡을 밀어 넣으면 된다.


  디제이는 잉위 맘스테인처럼 생겼고 역시 머리가 무척 길었다. 헤드폰을 쓰고 레코드판을 보고 있다가 신청곡이 들어오자 헤드폰을 벗고 구멍 쪽으로 가서 나의 신청곡 메모지를 집어 들고 한 번 보더니 뒤로 돌아 레코드판을 돈을 세듯 촤르르 넘겨가며 신청곡의 레코드를 집어 들었다.


 집어 든 레코드판을 보니 제니스 조플린의 것이었지만 킨의 앨범은 찾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킨의 음반은 레코드 시장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등장했다. 그래도 외국의 노래는 아직도 레코드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킨의 음악을 한국에서 레코드로 듣는다는 것은 무리다. 시디플레이어나 파일로 틀어야 할 것이다. 레코드로 듣는다면 참 좋을 텐데.


  디제이는 신청곡을 적은 메모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CCR의 노래가 끝나고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가 나왔다. 데이비드 보위에 대해서도 디제이는 실컷 이야기를 했다. 데이비드 보위는 정말 외계인일까. 그의 음악, 그의 행동, 그의 얼굴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그걸 여실히 말해주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디제이는 내 신청곡을 적은 쪽지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음악 감상실 안을 둘러보았다. 생긴 지 이미 몇 년은 된 것 같았다.


  어째서 그동안 사람들은 이곳을 외면하고 있었을까.


  아니 나는 그동안 왜 몰랐을까.


  동네를 채우고 있는 대부분 인구가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음악 감상실이라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시큰둥했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의 음악 감상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음악소리도 요즘 고출력 음장 기기에 비해서 모자라지 않았다. 디제이 뒤로 보이는 레코드판은 수백 장, 아니 수천 장은 넘어 보였지만 홍수 같은 음악을 커버하기에는 모자람이 많았다.


 레코드판으로 틀지 못하는 음악은 컴퓨터로 틀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디제이 박스 속에서 컴퓨터는 보이지 않았다. 유리벽으로 보이는 디제이는 레코드를 걸고 바늘을 치우는 모습만 볼 수 있었고 마이크와 소리를 줄이고 높이는 기기와 여타 다른 음장에 관련된 기기는 보였지만 컴퓨터는 보이지 않았다.


 노트북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고 컴퓨터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책상 위에 태블릿 기기가 있나 싶어서 고개를 거북이처럼 빼서 봤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완전히 아날로그 식이다. 나는 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었다.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가 끝나고 Queen의 Somebody To Love가 나왔다. 내 신청곡은 틀어주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하는데 디제이가 멘트를 중간에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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