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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7. 2022

라디오를 켜봐요 18

소설


18.


 아이들이 먹는 양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양의 밥을 먹었고 반찬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 최소 다섯 가지가 조밀하게 반찬 통을 채우고 있었다. 어쩌다가 아이들이 치론이의 밥을 떠먹는 경우가 있었는데 치론이는 자신의 흰밥에 양념이나 간이 묻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래서 누군가 치론이의 밥을 떠먹다가 포크 숟가락에 묻은 양념이 묻기라도 하면 화를 냈다. 그때는 평소에 욕을 하지 않던 치론이의 입에서 나오는 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먹던 밥과 반찬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불처럼 화를 냈다. 그 후로 누구도 치론이의 밥에, 자신의 입에 댔던 숟가락으로 양념을 묻히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나의 도시락을 엎질러서 밥을 못 먹게 되었을 때 치론이는 자신의 밥을 기꺼이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먹이도 돼? 라고 묻자, 그저 먹으라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떠먹어도 흰밥을 더럽혔지만 치론이는 웃으며 밥을 먹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반 아이들은 사겨라, 사겨라, 라는 말을 우우 하며 했고 우리는 숟가락을 입에 물고 팔짱을 끼고 교탁 앞에서 교실 뒤로 걸었고 아이들은 딴 따따딴 하는 웨딩스러운 음을 흥얼거렸다.  


 수업이 끝나면 치론이와 함께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수업을 마치고 치론이는 워터 덕에 같이 가는 날이 있었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바로 가는 날이 있었다. 나의 행동반경은 뻔했기 때문에 치론이는 내가 워터 덕에 가지 않으면 그것을 알고 집으로 바로 갔다.


 나는 어쩐지 오락실도 별로였고 여학생이 바글바글한 달라스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여자 아이들을 구경하는 것도 별로였다. 치론이는 꾸준하게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고3이 되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팝을 심도 있게 듣는다고 해서 대학교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나는 여름방학에 접어들면서 전문대라도 가기 위해 필요한 공부를 했다. 졸업을 하면서 나는 전문대에 들어갔고 치론이는 남자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간호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남자는 치론이 혼자뿐이었다.


 그렇게 치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섭섭하다거나 우리 연락하며 지내자, 같은 말은 주고받지 않았다. 곁에 있는 다른 친구들처럼 어딘가 떨어져 지내다가도 방학이거나 주말이 되면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만난 치론이는 어쩐지 딱 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한창 유행하던 단어, 유니섹스 같았다. 머리는 젤을 발라 단정하게 정리를 했는데 자동적으로 ‘아기네스 딘’이 떠올랐다. 화장은 한 듯 안 한 듯 더욱 세련되었고 눈썹은 정리를 해서 가지런했다.


 정글 같은 내 눈썹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다. 가방도 여자들이 들고 다니는 백에 가까운 가방을 들었고 같은 학과에 다니는 여자애들과 길거리에서 만나면 반가워서 인사를 하는데 서로 방방 뛰며 양 손바닥을 마주치며 인사를 하는 것이 영락없는 여자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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