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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Aug 29. 2022

라디오를 켜봐요 20

소설


20.


 “여동생이 있었어?”


  사실 파스타를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 맛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늘 먹던 라면이나 칼국수와는 달랐고 냉면과도 달랐다.


 “응, 이제 중학교 3학년인데 오전에 담임선생님을 만나고 오는 길이야. 방학하기 한 달 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대. 그래서 집으로 연락이 왔더라고.”


  치론이의 말에는 꽤 많은 상념이 묻어났다. 치론이의 집에는 음식 냄새가 풍기고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했지만 사람의 들숨과 날숨이 빠져 있었다. 우리는 파스타를 먹었다. 어머니는 몇 년 전에 시장에 갔다 올게, 하고 난 뒤 영화처럼 아직 시장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타지에서 일을 하는데 한 달에 한 번, 내지는 두 번 정도 집에 올뿐이었다. 낯선 파스타와 치론의 이야기 사이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그저 파스타를 배운 대로 포크에 돌돌 말아 입안으로 밀어 넣어서 먹는 것뿐이었다.


 “담배도 피우나 봐, 술도 마시고 말이야. 아마 남자애들과 돌아가면서 봉크도 했을 거야. 속상해.”하고 치론이가 말하며 포크를 탁 놨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다음 순간 집 안이 침묵으로 꺼지는 느낌이었다. 파스타에는 집에 감도는 분위기와는 달리 치론이의 온기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처음 먹어보는 맛이라 잘 알 수 없는 파스타를 냠냠 거리며 먹을 수 있었다.


 “파스타는 많아.”


  나는 치론이를 보며 이제 그만이라며 웃었다. 치론이는 “아니야, 더 먹어.”라며 수북한 파스타를 가리키며 웃었다. 꼭 치과에서 공들여 만들어 놓은 것 같은 가지런하고 하얀 치아가 웃음을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치론이는 고등학생 때부터 잘 웃었다. 비교적 재미가 없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치론이는 치아를 다 드러내며 웃었다. 아니다, 웃어준 것에 가깝다.


 다른 아이들의 말에는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내가 말을 하면 치론이는 늘 그랬다. 고등학교 때 아이들에게 여자, 가시나, 이 년이, 수청을 들라, 같은 말을 들어도 치론이는 개의치 않았다.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말을 재미있게 받아넘겼다. 어쩌면 치론이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파스타를 종류별로 만들었다. 간호대학을 다니면서 혼자 생활을 하다 보니, 가 아니라 이미 여동생과 둘이 살면서 여동생의 도시락을 아침마다 준비해야 했고 자신의 도시락도 싸가지고 와야 했다. 동생의 교복이 뜯어지면 꿰매는 것도 치론이가 했다. 우리 둘이 먹는 파스타가 식탁 위에 네 접시가 놓였다.


 미트볼이 들어간 파스타, 토마토소스가 약간 묻은 파스타, 카레소스로 만든 파스타, 크림 파스타, 그리고 맥주가 있었다.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치론이는 나에게 음악을 틀어주겠노라고 했다. 치론이는 가요만 들었지만 나를 위해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틀었다.


 “비교적 신나는 음악이 많아서”라고 치론이가 말했다.


 ‘맨 인 더 미러’가 나왔다. 우리는 턱을 괴고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들었다. 밖은 너무 더웠고 집 안은 서늘할 정도로 시원했다. “전기세는 걱정 안 해. 우리를 버리다시피 하고 멀리 있는 아빠가 내주거든. 미안하지 않게 해줘야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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