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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5. 2022

라디오를 켜봐요 27

소설


27.


 그리고 가장 미치게 만드는 것은, 척박한 땅을 탐험하는 탐험대처럼 나무 발판을 꾸물거리며 유유자적 다니는 흰 벌레들이었다. 그것은 파리의 유충들, MAGGOT이었다. 발판 위에 구더기 한두 마리는 그대로 귀엽게 봐줄 만했지만 밑으로 꾸물거리는 구더기 수백 마리는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지옥이었다. 볼일을 보다 잘못하면 잔재의 진한 물이 튀어 올라올 판이었다.


 벽면에는 온통 잔해가 묻어 있었다. 대단했고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어떤 식으로 볼일을 보면 벽에 이렇게 많은 양의 잔해가 피카소의 그림처럼 마구잡이로 붙어서 말라 있는지 미스터리했다. 20여 년 인생을 살면서 이렇게 힘든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화장실은 지옥 입구 같았다. 치론이가 소리를 지르며 나올 법했다. 치론이뿐만이 아니었다.


 화장실에 들어갔던 나도, 상혁이도, 교상이도 전부 욕을 하며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상혁이 친구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효상이만 기타를 손에 쥐고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저놈의 기타를 들고 오느라 더 힘들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아?”라는 말에 효상이는 양손을 들어 주위를 보라고 했다.


 “온통 산이야 씨바.”


  샤워시설 같은 건 없었다. 작은 마당의 수돗가에서 땀을 흘린 부분만 수건에 물을 적셔 닦았고 세수를 했다. 아침이 도래하자마자 떠나리라, 말을 하진 않았지만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방 안에 짐을 풀자마자 물에 적신 행주처럼 모두가 늘어졌다.


 배는 심하게 고팠지만 무엇을 먹어야겠다는 의욕은 일체 들지 않았다. 애당초 펜션을 생각하고 온 것이 아니었지만 친구의 집이 민박 정도만 되었어도 이렇게 허탈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도착하자마자 밤이 깊어 버렸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제대로 샤워도 하지 못한 채 찝찝함을 가득 안고 잠이 들어야 할 판이었다.


 치론이 빼고 칫솔을 들고 오지 않아서 내가 치론이의 칫솔로 양치를 하고 치론이가 그 칫솔로 양치를 한 다음에 가방에 넣었다. 교상이가 양치를 하고 싶다며 치론이에게 칫솔을 빌렸는데 치론이는 교상이가 양치질을 하고 난 다음 버려 버렸다.


  좁은 방에 늘어져 있는데 상혁이 친구가 밥상을 들고 왔다. 감자전과 된장찌개, 멧돼지 구이와 상추, 풋고추와 마늘장아찌가 놓여 있었고 밥솥 채 들고 왔는데 밥에는 감자가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된장찌개는 약간 검었으며 멧돼지는 직접 잡았다는 것이다. 맙소사.


  그리고 모든 반찬이 직접 일구어서 얻어낸 것이라 맛이 좋을 거라고 했다. 밥을 보니 우리는 허기가 배를 긁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상혁이 친구는 냉장고에서 소주도 꺼냈다. 소주는 살얼음이 껴 있을 정도로 차가웠고 목을 타고 술술 내려가서 속을 뜨겁게 만들었다.


 모두가 멧돼지 고기에 젓가락을 들이댔고, 고기를 한 점씩 입에 넣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돼지고기의 맛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너무 질겼다. 아주 질겼고 몹시 질겼고 정말 질겼다. 모두 입을 볼록하게 만들어서 삼키지를 못했다. 서로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퍽하고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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