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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4. 2022

태풍이 부르는 노래


 우리 집은 바닷가에 인접해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은 부러운 눈빛을 띱니다.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어떤 면으로 보면 참 낭만적인 색채를 띠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면으로 본다면 태풍이 몰아치면 생존에 위협을 받기에 어른들은 늘 긴장을 하며 지냅니다.


 태풍은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반드시 오니까요. 어떤 해는 일 년에 두, 세 번 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 바닷가에 살면서 매년 태풍을 보아왔습니다. 태풍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태풍이 오면 그 태풍이 그 태풍이려니 하겠지만 태풍은 우리 사람들처럼 전부 제각각입니다.


 모두 다른 모습을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강우량을 많이 동반하는 태풍이 있는가 하면 바람을 많이 지니는 태풍이 있고 파도를 크게 일으키는 태풍이 있는가 하면 바다는 고요하게 두고 지형에 영향을 줘버리는 태풍도 있습니다.


 바다는 집에서 30미터만 가면 바로 바닷가이니 우리 집은 바다에서 꽤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고 보면 됩니다. 태풍이 바다를 변이 시키는 모습을 매 년 보는 겁니다. 태풍은 전조가 있습니다.


 하늘이 온통 잿빛으로 변하고 고요해지며 구름의 형상이 변하기 시작하며 전운이 감돕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하늘이라고 불리는 것이 마치 사랑에 실패하여 열병을 심하게 앓는 미술가가 그려놓은 하늘처럼 보입니다. 우울하고 절망과 멸망의 감정이 가득 실린 고요한 하늘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매 년 보다 보면 그런 것은 항시 느끼게 됩니다. 태풍이 다녀가면 바닷가는 쓰레기로 가득 찹니다. 표류물이 바다 위에 떠다니다 보면 대부분 쓰레기가 됩니다. 어떤 영화에서는 태풍이 몰고 간 후에 바닷가가 아주 깨끗하게 보이던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그다음 날이나 바로 그날에 태양이 다시 나타나도 바다는 아주 더러운 흙색을 띄고 바닷가는 어디서 몰고 온 것인지 모를 쓰레기로 가득 찹니다. 아이였던 시절에는 파도를 타고 태풍이 몰고 온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일이 신났습니다.


 어이없지만 작은 냉장고도 있었고 개 집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자 속옷도 세트로 있었고 태풍으로 인해 깨져버린 유리파편이나 고기를 잡는 그물의 일부가 미역과 함께 같이 뒤섞여 딸려 온 적도 있었습니다. 미역과 뒤섞인 그물은 마치 거인 유령의 머리카락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동차의 백미러로 보이는 거울도 있고, 큰 소나무 가지가 꺾여 해안에 밀려온 것도 있었습니다. 해안 근처에 등대가 있습니다. 등대공원이 전부 소나무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마도 태풍이 몰아치면서 힘없는 소나무 가지가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태풍이 닥쳐오면 이런 모습을 매년 한 번씩은 꼭 보게 됩니다. 더불어 바다에 인접해 살고 있는 사람들은 태풍이 오면 바짝 긴장을 하고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아이들은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태풍이 오면 그저 재미있는 일이 하나 더 생긴다고 느낍니다.


 아시겠지만 태풍이 몰아치면 그 소리가 아주 큽니다. 무섭게 몰아치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소리입니다. 태풍이 오면 태풍으로 인해 간접 피해가 더 큽니다. 도로 위의 간판이나 현수막 같은 것들이 태풍이 만들어낸 몇 헥토파스칼에 의해서 공중으로 떠서 날아다니며 유리창을 깨버린다던가 사람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습니다.


 태풍 자체의 소리보다 태풍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터뷸런스나 잔류가 자아내는 소리가 더 굉장합니다. 그것은 두려움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태풍 본연의 소리도 엄청납니다. 대공포의 소리 같습니다. 지축을 울린다는 말이 통용되는 소리를 태풍은 냅니다. 그런데 저에게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태풍 본질이 내는 소리에 전 어느 날부터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미취학 아동에서 탈피를 했을 때 내가 태풍의 소리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태풍이 휘몰아쳐오며 만들어내는 신음과 굉음, 그 거대하게 쥐어짜는 소리를 언젠가부터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멀리 떨어진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드디어 그 소리를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러지 말아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태풍이라는 것은 아직 인간의 힘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천재지변입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강하게 끓어오르는 욕망 같은 그 힘을 제 자신도 제어가 불가능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운이 없었는지 그날은 저 혼자 집에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집에 없었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태풍이 오니 문을 잠그고 다른 날처럼 꼼짝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습니다. 전 그러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전 정말 고무되어 있었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바닷가에 태풍이 오기 전이면 바다가 호수처럼 고요해집니다. 바닷물이 싹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어느새 바다가 다시 고요하게 해안에 들어찹니다. 자세하게 보고 있지 않으면 바다가 만들어내는 그 신기한 그림을 놓치게 됩니다. 전 그러지 말아야 했지만 문을 열고 바다에 나갔습니다. 우우 우웅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은 태풍이 오기 전의 전주 같은 것입니다.


 태풍이 만들어 낸 노랫가락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터무니없이 들리는 이야기겠지만 저에게는 태풍이 오면 태풍이 만들어내는 운율을 들을 수 있었어요. 그것은 노래처럼 들렸습니다. 꽤 부드럽기도 하고 경쾌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웅장했습니다. 굉장히 웅장했어요.


 태풍이 만들어 낸 운율은 드뷔시의 ‘바다’와 흡사했습니다. 네, 그랬어요. 확실하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굉장했습니다. 전 태어나서 그런 광경과 경험은 처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콰르르릉 쿠쿵 하는 소리가 내 머리를 뒤 흔들었습니다. 더불어 내 눈앞에 바다가 내 키의 몇 배 높이로 떠올라 있었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바다 위의 표류물이 전부 하늘에 떠서 뱅뱅 돌고 있었습니다. 바람은 내 머리카락을 전부 뽑아 버릴 기세로 나를 때렸고 옷을 마구 뒤 흔들었습니다.


 나는 대역죄인 같은 몰골을 하고 이대로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사멸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방법은 하나지만 죽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들었습니다. 행복의 종류는 한 가지이나 불행한 이유는 수만 가지라는 말처럼 이렇게 죽는 것도 덜 불행하다고 생각을 해 버린 것입니다.


 전 양팔을 들었습니다. 태풍은 내가 서 있는 바다를 지나쳐 어딘가로 이동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요. 태풍은 자신에게 허락된 곳에서는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대동하여 움직입니다.


 쿠우우웅 쿠르르릉 콰과쾅.


 가슴을 뒤흔드는 소리에 넋이 나갔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태풍이 하늘로 띄워 올린 표류물 중에는 바다거북도 보였습니다. 어린아이만 한 거북이였는데 눈앞에서 다른 쓰레기와 표류물과 함께 공중 부유해서 태풍의 바람을 맞고 있었습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단지 저의 착각일지도 모릅니다만 본 대로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태풍은 거대한 소리와 함께 강력한 바람을 만들었습니다. 나도 바람을 맞았고 공중으로 떠 오른 쓰레기 더미와 표류물 역시 바람을 맞고 있었습니다. 바다거북도 공중으로 떠올라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태풍의 거센 바람을 맞았습니다.


 태풍이 만들어낸 바람은 바다의 파도를 3미터 이상 크게 만들었고 공중으로 떠오른 쓰레기들의 모양을 완전히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다거북은 꽤 먼바다에서 태풍에 휩쓸려 이곳까지 표류해온 모양이었습니다. 지쳐 보였고 늙어 보이는 바다거북이었습니다.


 그런데 태풍의 바람에 의해서 바다거북은 등껍질은 그대로 둔 채 얼굴과 지느러미, 꼬리가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살점이 점점 흐물렁 해지더니 바람에 의해서 바다거북은 처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보잘것없는 등껍질만 남겨둔 채 생명체에서 이탈해가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쓰레기들도 태풍이 만들어내는 소리와 바람에 의해서 성질이 전부 뒤 바뀌었습니다.


 [잠시 틈을 두었다. 물을 한 잔 마셨다]


 전, 그 뒤로 점점 아무것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네, 다른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병원에서도 아직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불편한 점은 없습니다.


 네, 태풍의 소리는 들립니다. 거짓말이라고 받아들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매 년 태풍이 오면 그 소리는 들을 수 있어요. 태풍이 절 부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태풍을 연구하는 기관이 있지만 태풍을 저처럼 체험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렇게 해서 태풍 전문가가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들은 태풍의 소리는 전부 이 안에(가슴을 가리키며) 있습니다. 하나하나 다 다릅니다. 경이로운 일입니다. 아마도 그때 전 바다거북처럼 죽어야 하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태풍이 나의 죽음을 막아줬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인간의 일이라는 게 참 어이없고 당황스럽기도 한 것처럼 또 굉장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 인터뷰를 끝내면 ‘Storm Chaser’에 출연 중인 토네이도 전문가인 Tim Samaras와 함께 토네이도를 만나러 갑니다.


 그들은 아주 전문적입니다. 지구에서 최고죠. 순식간에 일어나는 현상의 데이터를 기록하고 계측해버립니다. Tim Samaras팀은 계측장비와 Ni Diadem소프트웨어를 자연스럽게 이용하는 기술자들입니다. 그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제 일이니까요. 저 역시 토네이도와 만나는 것에 흥분됩니다. 정말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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