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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0. 2022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 1

소설


1.


[무라카미 하루키의 ‘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의 오마쥬]      

       

  기차는 앞으로 가고 있다. 장애물이 있다고 해서 후진을 하거나 철길 위를 이탈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오로지 앞으로 그리고 또 앞으로 목적지까지 지속적으로 갈 뿐이다. 그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또는 시간이 앞으로만 가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가 점점 어른이 되듯 기차는 앞으로 나아간다.


 달리는 말처럼 멋지게 쿠쿵, 쿠쿵하며 출발하여 터득 터득, 터득 터득하는 박자에 맞추어서 기차는 빠른 속력으로 멋지게 앞으로 간다.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서 어지간하면 늦는 법이 없는 것이 기차다.


 그래서 그는 타지방으로 출장을 갈 때에는 오로지 기차를 이용한다. 특히 야간열차를 이용해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을 좋아한다. 고요하고 창밖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사색을 즐기거나 잠이 오면 그대로 잠들 수 있어서 좋다. 낮의 기차는 잠들지 않은 아기와 같다. 운치와는 조금 멀어지고 사람들의 이동도 잦다. 그래서 낮 기차는 그와 맞지 않았다.


  어두운 밤공기를 가르며 앞으로 가는 기차를 그는 언젠가부터 택하게 되었다. 밖에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뿐이고 기차의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는 것은 어쩐지 양수 속에 들어가 있는 따뜻한 안온감이 들었다. 누군가의 품에 쏙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든다고 그는 터무니없지만 생각했다.


 터득 터득, 터득 터득하는 일정한 소리를 내며 바퀴를 굴려 꾸준히 지치지 않고 달려가는 야간열차에 그는 오늘도 몸을 파묻고 출장길에 올랐다. 좀 웃기지만 열차의 터득 터득하는 소리는 “그래 맞아, 그래 맞아, 그래 맞아”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혼자서 외투에 목을 집어넣고 혼자서 킥킥거렸다.


 누군가 볼까 봐 조용히 웃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에도 지방에 거래 건으로 갈 땐 기차만 한 게 없다. 더 정확하게 야간열차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야간열차의 여운은 운치가 있어서 더욱 좋다는 말이기도 하다. 운치라고 해봐야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어둡고 긴 밤의 기운이 드리운 야외에 간간이 보이는 가로등 불빛이나 인공광원이 만들어내는 허술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그는 떠올렸다.


 시들어가는 상상력을 부풀리게 했다. 어두운 겨울밤의 공기도 그렇지만 기차에 올라타면 위기의식 같은 것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아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렇게 야간열차는 꾸준하게 달려 새벽 2시에는 영주의 간이역에 잠시 정차를 하고 15분간 대기를 한다. 그는 그 시간에 잠시 내려 따뜻한 가락국수를 한 그릇 사 먹을 요량이었다. 이것이 야간열차를 타고 가는 길목의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어린 시절을 자연스레 생각나게 만드는 간이역에서 쑥갓이 들어간 짭조름한 가락국수를 먹는 것.     


  겨울에 유독 어울리는 간이역의 가락국수.     


  그래서 아직 잠들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야간열차의 실내는 어두웠고 고요했다. 기차가 철길 위를 달리는 소리만이 리듬감 있게 들렸다. 그래 맞아, 그래 맞아, 하며 말이다. 영주의 간이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야간열차는 스르륵 미끄러지듯 멈추었다.


 그는 간이역에 내렸다. 기차 밖의 날은 코끝이 아플 만큼 추웠다.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상당한 양으로 나왔다. 입을 꾹 다물고 와서 그런지 입김에서 비린내가 조금 났다. 그는 내리자마자 간이매점으로 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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