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Sep 11. 2022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 2

소설


2.


 “가락국수 한 그릇이요.” 그는 어깨를 모으고 추워서 발을 동동 굴렸다. 그가 주문함과 동시에 가락국수 장수가 일 분 만에 가락국수 한 그릇을 말아 주었다. 그래 이거야, 하며 그는 세상에서 제일 빠르고 맛있는 가락국수를 받아 들고 후후 불어서 후루룩 먹었다.


 가락국수의 면발, 쑥갓은 신선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오로지 야간 기차여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가락국수 맛은 어떤 맛과 바꿀 수 없었다. 가락국수 그릇을 들고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세상을 다 가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짭조름하고 뜨거운 국물이 입안에 들어가서 체내로 퍼지면 몸 안은 뜨거운 기운으로 따뜻해졌다.


 조미료가 가득 들어간 뜨거운 가락국수 국물이 위장으로 흘러들어 가는 기묘한 느낌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았다.


  그는 국물을 마시면서 생각을 했다. 시대가 이렇게 발전을 했는데 아직도 이렇게 촌스러운 간이매점에서 가락국수를 팔다니. 그는 무척 묘한 기분이었다. 간이역은 오래 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천장의 형광등도 가락국수 장수가 입고 있는 옷도, 손에 들고 먹고 있는 가락국수 그릇도 아주 오래 전의 모습처럼 보였다.


 요즘 이런 촌스러운 기하학무늬의 멜라민 그릇을 사용하는 곳이 있다니. 그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하면서 기이했지만 간이역의 가락국수 판매대에서 서서 가락국수 한 그릇을 진지하게 먹었다. 가락국수를 먹으려고 사람들이 많이 나올 법도 한데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그 혼자 서서 가락국수를 후후 불어서 먹었다.


 차가운 겨울의 밤, 간이역의 간이매점에 서서 뜨거운 가락국수를 후루룩 먹는 기쁨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전국에 몇 명 없을 것이다. 입안에 가락국수를 가득 넣어서 입을 오므리고 5분 만에 다 먹고 얼마냐고 묻자, 매점의 가락국수 장수가 500원이라고 했다.


  에? 놀라서 그가 고개를 드니 인심 좋게 생긴 가락국수 장수가 아주 두꺼운 외투를 입고 양팔에 촌스러운 토시를 한 채 웃고 있었다. 그는 갸우뚱거리며 천 원을 꺼내서 가락국수 장수에게 건네주며 잔돈은 됐다고 했다.     

  세상에 가락국수가 500원이라니. 질이 안 좋은 면이나 재료를 사용한 것일까. 그리고 외투는 뭐지. 아무리 봐도 20년은 더 된 의복 같았다.      


  그가 다시 야간열차에 뛰어 올라서 자리를 찾아서 걸었다. 뭐랄까. 열차 안의 분위기가 기차에서 내릴 때와는 조금 달라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뱃속에 들어간 가락국수의 뜨뜻하고 더운 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기차 안의 온도차 때문인지 기차의 유리면에 성에가 뿌옇게 껴 있었고 그동안 맡아보지 못한,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의 냄새가 녹록히 의자에서 느껴졌다. 시간의 냄새는 순수하게 났다. 아주 오래전부터 의자에 있었던 것처럼 순수한 시간의 냄새가 있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생성되자마자 사멸되는 관념이다. 반복이다. 그 말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은 아주 무섭고 그 속에서 사람은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된다.  

   

  어째서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이 드는 것일까.


  그는 고개를 계속 갸우뚱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갔다. 자신의 자리로 갈수록 쌍방향의 의자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라고 정의하기에는 많은 모자람이 있었지만 누군가 자신의 자리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그가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으니 맞은편에는 곰이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어이없지만 곰이었다.      


  곰? 이라니. 맙소사.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