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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2. 2022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 3

소설


3.


  곰은 주둥이가 일반 곰에 비해서 길었고 얼굴은 굉장히 컸다. 그에 비해서 눈은 작아 보여서 개그맨의 인상을 풍겼다. 그는 그러면 안 되지만 순간 큭큭 하며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놀라서 입을 막았다. 곰은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어서 아주 따뜻하게 보였다. 곰은 신문에 집중을 하다가 그를 한 번 보더니 읽고 있던 신문을 접었다. 저 큰 손으로 신문을 어이없지만 잘도 접었다. 신문을 보니 83년도 신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전 그리즐리 베어입니다. 네, 분명 보고 계신 것처럼 곰이 맞습니다.”


  그는 입을 조금 벌리고 넋이 나간 모습으로 아직 소화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꿈틀거리는 가락국수가 다시 목구멍으로 올라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곰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놀라거나 흥분을 하면 먹은 음식이 소화가 되지 않고 역류하는 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소화불량 때문에 늘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었다. 시험을 볼 때는 언제나 긴장한 탓에 이전에 먹은 음식이 시험을 보는 도중에 자꾸 올라와서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선을 보는 자리에서도 그는 음식물이 올라와서 화장실에 몇 번을 다녀오는 사이에 상대방이 그대로 집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늘 지는 인생이었다.


  “함고동 씨, 저에 대해 자세한 소개는 좀 있다가 하겠지만 먼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넋 나간 모습으로 곰을 쳐다보고 있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평일, 새벽의 겨울 시간대라 몇몇 안 되는 손님들이 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저한테 하시는 말씀이신가요? 제 이름은 함고동이 아…….” 그는 아주 작은 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네, 곧 차표 검열이 올 겁니다. 제가 지금 기차표 없이 기차에 올라타 버려서 제 차비를 좀 계산해 주십시오.”라고 곰이 말했다. 저 툭 튀어나온 주둥이로 잘도 말을 했다.


  “하지만.”


  “이천 원이면 됩니다.”


  “엣? 이천 원이요?”


  “네, 이천 원이면 아마 잔돈을 거슬러 줄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뭐 어려운 부탁은 아니라서 제가 계산을 해드리면 되는데, 요즘은 기차 요금이 이천 원으로는…….”까지 말했는데 곰은 신문을 들어 보이며 지금은 83년도라고 했다. 그는 곰이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기차의 복도 끝에서 은하철도 999의 차장처럼 복장을 한 직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야간에는 할인이 된다고 해도 자신은 4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기차표를 구입한 것으로 아는데 이천 원이라니. 그는 주머니에서 자신의 차표를 꺼내서 차장에게 보여주고 앞의 곰이 차표를 잃어버렸는데 계산을 하겠다고 하니 표정을 알 수 없는 차장은 천구백 원을 내라고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이천 원을 꺼내서 차장에게 주고 백 원을 건네받았다. 간이 기차표를 받아서 곰에게 건네주었다. 곰은 두툼한 손으로 기차표를 그에게서 잘도 받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것이 주머니인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배가 위치한 곳의 털 속으로 기차표는 들어갔다. 곰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함고동 씨, 고맙습니다. 덕분에 편안하게 목적지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을 합니다.”

 “아, 네. 그런데 제 이름이 함고동이 아니고 그러니까…….”


  곰은 비좁아 보이는 의자에 용케도 앉아서 몸을 잠시 흔들었다. 곰이 자신의 앞발을 들어서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그는 곰의 발바닥을 처음으로 보았다. 검은 발바닥은 오랫동안 땅바닥에 닿아서 굳은살이 켜켜이 쌓여 거칠하게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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