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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3. 2022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 4

소설


4.


 “알래스카에 있었으면 지금은 동면을 하고 있을 기간입니다. 그런데 급하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차비도, 수행원도, 아무도 없이 혼자 오게 되었습니다. 이곳으로 와서 처음으로 도움을 받은 분이 함고동 씨 당신이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 역시 행운아였습니다.”


 “곰님은 이름이?”그는 이렇게 물어보는 자체가 당황스럽기만 했다.


 “아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알래스카에서 온 그리즐리 베어입니다. 이름이 있지만 그건 너무 어려워서 부르기가 힘들 겁니다. ‘그리즐리’라고 불러 주세요. 저의 나이는 아주 많습니다. 함고동 씨가 상상하는 그 이상입니다. 겨우내 잠을 푹 자 둬야 봄에 풀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면 움직임이 둔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다른 곰들의 공격에도 방어를 해낼 수가 있어요. 우리들, 보기에는 이렇게 험상궂게 생겼지만(그는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식을 아주 사랑하는 동물입니다. 우리는 단체로 움직이지 않아요, 가족 내지는 개인적으로 움직여서 힘을 기르는 겁니다. 알래스카의 겨울은 지금 이곳 겨울보다 몇 배나 춥습니다. 아주 혹독하게 춥죠. 땅이 얼어 버립니다. 그러면 생명이 전부 끊어져 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겨울의 향연이 지속되죠.”


  그리즐리는 잠시 말을 끊었다. 곰은 그의 옆자리에 놓여 있는 가방의 주둥이에서 비어져 나온 물병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시선을 물병에 박은 다음 잠시 미동 없이 있었다. 침묵이 흘렀다. 이질적이었다. 침묵은 꽤 농도가 짙었고 손을 집어넣었다가는 다시는 빼지 못할 것 같은 침묵이었다. 그는 물병과 그리즐리의 눈을 번갈아 본 다음 가방에서 물병을 꺼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서 그리즐리에게 건네주었다.


 “하하, 뭐 이런 것까지. 단지 목이 좀 마르군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함고동 씨 당신은 참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군요. 당신처럼 좋은 사람은 드문데 전 정말 운이 좋은 곰입니다. 인간들이 오랫동안 곰을 사냥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는데 당신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군요. 하하.”


  당연한 것이 아닌가. 회사 업무 보기도 바쁜데 곰 사냥에 열을 올릴 시간이 있나.


  사냥? 사냥은 또 무엇인가.


  단어만 알고 있었다. 그건 있는 사람, 즉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자들의 특권일 뿐이다. 게다가 말하는 곰이라니. 곰은 티브이 속에서나 봤지 실제로 곰을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동물원에도 가보지 못했다. 더군다나 말을 하다니. 그의 의식과 생활 활동 반경에서 곰이라는 존재는 의미도 의식도 없이, 그동안 자신과 별개의 문제였다. 그리즐리라는 곰은 물병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그래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다.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가. 모두가 그에게 좋은 사람이군,라고 말을 했다. 경리를 보는 어린 아가씨도 대리님은 정말 좋은 사람 같아요, 라는 말로 부탁이나 명령을 절대 거절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그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가버리고 말았다. 범위가 넓고 제대로 의미가 모호한 말이 좋은 사람이다. 그는 좋은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좋은 사람이 되었다.


  “아, 맛있습니다. 풀 맛이 나는데요. 아주 좋아요. 이런 물맛을 이 먼 곳에서 맛보게 되다니. 이런 곳에는 그저 수돗물이라는 것만 존재하는 줄 알았거든요.”


  곰은 보기보다 어느 정도 이곳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했다. 곰의 얼굴에 표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면 표정은 있지만 그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터득 터득하는 기차가 질주하는 소리와 기차가 바람을 가르며 지나가는 소리와 가끔 깊은 잠이 들어있는 사람들의 피곤한 코골이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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