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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09. 2022

라디오를 켜봐요 31

소설

  




[마지막]

    

  난 이제 앞으로 누굴 만나더라도 더 이상의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어.


  사람들이 십 년 만에 무너지는 것에 비해 나는 일 년 만에 완전히 무너졌어.


  내 속의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무엇이 파괴되어 버렸어.


  이제 나에게 시간이란 더 이상 선형적이지 않아.


  나는 닳아 없어지고 말 거야.


  나는 신의 실패작이 아니야.


  단지 다른 사람들이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는 걸 나는 느끼려고 하는 것뿐이었거든.


  나는 고립되었어.


  너는 내가 고립 속에서 죽어가는 게 무서울 거라 생각하지만 죽음은 그렇게 무서운 게 아니야.


  실로 무서운 건 고립 속에서 영원히 갇혀 지내는 거야.


  네가 알아줬으면 해.


  너만 나를 알아주면 돼.


  너의 기억 속에 내가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만족해.        


  

 치론이 목소리에는 생명력이 빠져나가 있었다. 그동안 치론이는 고립된 채 힘들어했고 또 힘들어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치론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않았다. 일주일 전에 미리 예약을 하고 일주일 후에 비퍼의 메시지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집 열쇠는 현관 앞의 몇 번째 화분 밑에 있다고 해서 열쇠를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치론이 같지 않은 치론이 모습을 보면서 치론이 목소리를 계속 떠올렸다.     


 네가 알아줬으면 해. 너만 나를 알아주면 돼.     


  치론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여자와의 봉크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같이 살아갈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에게도 큰 문제를 안겨주는 꼴이 된다.


  치론이 아버지는 이미 죽었다. 여동생은 결국 술집에 나가기 시작했고, 술집에서 일을 하며 만난 외국인과 함께 한국을 벗어났다. 치론이는 거대한 자신의 문제를 끌어안고 사람들의 억압과 눈치와 편견 속에서 고립 속으로 파고들어 갔다. 그곳에서 사는 것보다 죽음으로 영원히 사는 것을 택했다. 치론이는 비로소 자유로워진 것이다. 치론이 일기를 보고 녀석의 힘듦이 고스란히 내 몸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제야 어깨를 들썩였다. 세상에는 이반도 많았지만 치론이는 그 속에도 제대로 끼지 못했다. 나는 치론이 일기를 다 읽고 모두 태웠다.          

  지금은 그녀와 페팅 중이다. 라디오가 나오고 있다. 28살인 사라가 정성스럽게 페니스를 빨며 치론이가 남긴 관념을 씻어주고 있었다. 나는 28살에 삶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사라는 매일 맛있게도 꿀꺽 삼켰고 그대로 우리는 키스를 나눴다. 내 몸에는 시취가 세포 깊숙이 배어들어 빠지지 않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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