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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Nov 13. 2022

토스는 두툼해야 맛있다

시장표 토스트



토스트는 어릴 때 어머니가 집에서 계란물을 입혀 구워서 설탕을 발라주던 토스트가 가장 생각이 난다. 식어도 식은 대로 맛있었던 토스트였다. 토스트 계의 입문이 어머니의 계란물 입힌 토스트였다. 그런 토스트는 제과점에서도 가끔 팔았다.


두툼한 토스트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화이트 컬러 사무실이 밀집한 빌딩 밑에서 출근 전에 서서 후다닥 먹는다. 토스트는 어쩐지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기보다는 빠르고 신속하게 호다닥 꿀꺽 먹어치우는 것이다. 그런 맛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어떤 음식이든 호다닥 먹는 모습이 아주 맛있게 보인다. 국밥이 맛있게 보이는 이유도, 라면이 맛있게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내가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런 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것이 두 군데 있는데 한 군데는 저녁 6시면 문을 닫아 버린다. 나는 먹을 수 없다. 예전에는 밤까지 이모님 두 분이서 열심히 토스트를 굽고, 김밥을 말고 오뎅을 끓여 팔았는데 오전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오전 장사가 잘 되어서 저녁에는 일찍 문을 닫게 되었다. 서서 토스트를 먹으며 오뎅 국물을 같이 마시는 맛이 있다. 오뎅 국물과 함께 토스트를 먹는 게 맛있는데 못 먹게 되었다.


두 군데 중 한 군데는 시장 안에서 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리어카다. 전통시장은 변혁의 바람을 타고 천장에 전부 거대한 아케이드가 설치되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방해받지 않고 먹을 수 있다. 토스트 리어카만 빼고 떡볶이 리어카들이 일렬로 죽 늘어서 있는 시장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글우글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아케이드 덕분에 비바람과 눈이 오면(남부지방의 바닷가라 눈이 거의 오지 않지만) 뭐랄까 눈을 맞으며 먹는 토스트가 더 맛있을지도 모른다. 찬 바람이 심할수록 우리는 뜨겁고 부드러운 것을 찾게 되니까. 대형마트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나더니 언젠가부터 전통 시장의 활기가 주춤하더니 코로나를 거치면서 대부분 일찍 문을 닫는다. 심지어는 늘 사람들이 서서 떡볶이를 먹던 리어카들도 일찍 집으로 들어갔다.


오직 전통시장 안에 있는 토스트 리어카만 늦은 밤까지 홀로 장사를 한다. 시장표 토스트는 너무 맛있다. 익히 알고 있는 그런 맛이다. 그래서 맛있다. 계란에 각종 야채를 넣어서 휘휘 저어서 불판에 지단으로 만들어서 버터에 구운 빵 사이에 넣고 케첩과 설탕을 뿌려서 준다. 우리기 잘 알고 있는 그런 토스트다. 맛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잘 먹게 되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왜 그럴까. 늘 의문스러운 것들은 알 수 없는 것들 뿐이다. 알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의문스럽다.


여기서는 서서 먹지 않고 포장을 해 온다.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서서 먹기에는 늦은 시간이고, 무엇보다 토스트 리어카를 제외하고 양 옆으로 죽 늘어서 있는 떡볶이 리어카들은 전부 문을 닫아서 황량하다. 여기에는 토스트만 구워 팔기 때문에(시원한 캔 음료도 있지만) 오뎅 국물 같은 건 없다. 겨울에도 예전만큼 춥지 않다.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라 나는 몸이 후끈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겨울에 썩 춥지 않고 가을인데 춥고, 맛있는데 사람들이 먹지 않고 늦게까지 장사를 해도 먹고사는 것이 힘들다. 이상하다면 참 이상하다.


햄버거도 토스트도 두툼한 것이 좋다. 두툼한데 그 안에 치즈를 또 넣어서 먹으면 더 좋다. 거기에 계란 스크램블을 곁들인다. 완벽하다. 손으로 들고 먹기에 벅차다. 벅찬 게 좋다. 평소에 벅차게 먹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이렇게 벅차게 먹고 싶을 때 벅차게 먹자.


이런 분위기는 미국의 데니스가 생각난다. 데니스는 24시간 오픈이고 벅찬 팬케익이나 두툼한 햄버거와 감자튀김 같은 것을 파는데 두툼한 토스트에 갖은 소스를 뿌려 헤비 하게 먹고 나온다. 데니스의 모습은 하루키의 소설 ‘어둠의 저편’ 첫 장면부터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데니스가 없는 것 같지만(또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본에는 데니스가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소설 속 두 주인공이 야심한 밤에 데니스에서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툼한 토스트를 쓱 썰어서 포크로 집어서 입에 크게 넣어서 먹는 맛이 좋다. 여기에 어울리는 음료는 뜨겁고 진한 커피다. 물론 밖에서 서서 먹게 된다면 오뎅 국물이 어울리지만. 입에 가득 넣고 냠냠 먹으며 진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 좋다. 야채? 야채보다는 치즈를 하나 더 넣자. 벅찬 토스트이기 때문에 벅차게 먹어야 한다. 야채 따위 절대 한 접시에 곁들일 수 없다. 사실 토스트 사이에 들어있는 계단 지단 속에 당근이나 파 같은 야채가 있다. 데니스에는 오직 밀가루와 당분으로 된 팬케이크지만 시장표 토스트는 그 나름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 나쁘지 않다. 그래서 벅차도 괜찮다.


접시 위에 긴 소시지 하나가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소시지를 칼로 썰어 먹는 맛도 좋다. 코로나 전에는 수제 소시지를 삶아서 파는 전문점에서 왕왕 사 먹었는데 그곳이 사라지고 난 후에는 가끔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만 먹는다.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라도 접시 위에 올려 여백을 다 가릴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천천히 먹으면서 즐거운 소설을 읽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한 마을에 고양이 떼가 출몰해서 수천 마리가 주인공이 사는 집 근처에 빙 둘러서 그곳을 쳐다보고 있고, 그 고양이 떼를 수습하러 온 질병관리본부에서 파견한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 조차 고양이들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굉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 일찍 문을 닫고 저어기 토스트 리어카만 아직



오늘의 선곡은 토스트를 먹으며 들으면 좋을 노래 윤하의 별의 조각 https://youtu.be/CWTwiE15p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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