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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15. 2022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 6

소설


6.


 가락국수 값부터 이상했다. 열차 내부의 분위기도 이상했고 차장도 이상했다. 그는 요즘 휴대전화기로 기차를 예매하는 시대인데 자신은 기차역에서 표를 구한 것뿐이다. 휴대전화를 그리즐리에게 보여주려고 주머니를 뒤졌지만 휴대전화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먹은 가락국수가 소화가 되지 않고 자꾸 올라오려고 했다. 곰 하고 대화를 하다니, 이건 정말이지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즐리 몰래 자신의 허벅지를 꽉 꼬집었다. 눈물이 나올 만큼 아팠다.     


  ‘돌’이라니.      


  무슨 돌이 여기로 흘러 들어왔다는 말인가. 그는 돌을 떠올렸다. 그리즐리가 양손으로 가늠했던 만큼의 돌을 머릿속에서 나열했다. 그저 돌멩이가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그 돌 때문에 알래스카가 재난이 오고 한국에는 빙하기가 온다는 말인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뺨을 때렸다. 역시 아팠다. 이것이 비현실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관념에 고개가 숙여졌다. 몸이 순간적으로 불쾌하게 느껴졌다가 어떤 좌절감이 들었다. 좌절감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얼마 큼의 크기인지 분간도,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리즐리는 고개를 숙인 그에게 다가와서 손인지 앞발인지 그것을 그의 어깨에 올리고 괜찮으냐고 물었다.    


  괜찮을 리가 있나.     


  그렇지만 곰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그는 고개를 들어서 곰을 바라보았다. 곰의 눈은 아기의 눈동자처럼 검고 반짝였다. 가까이서 보는 곰의 얼굴은 정말 컸다.


  “그리즐리 베어 씨, 당신은 그래서 어디까지 가시는 거죠?” 그가 곰을 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곰은 그가 괜찮아 보였는지 앞발을 그의 어깨에서 내리고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댄 다음 잠시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때 열차 안이 유난히 추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뚜껑이 없는 오픈 기차를 타고 백 킬로미터가 넘는 속력으로 겨울의 밤을 달리는 것처럼 추웠다. 그는 몸을 오들오들 떨었고 양팔의 팔짱을 꼈고 몸을 말았다. 추위가 얼굴을 아프게 했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히터에 문제가 생겨서 밖의 추운 공기가 실내로 유입되어 몹시 추우니 수리를 할 동안 따뜻하게 옷을 껴입고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다.


 기차는 점점 가속도가 붙는 듯했고 기차 안은 숨을 쉴 때마다 입김이 훅훅 나왔고 뾰족한 얼음이 날아와서 몸을 찌르는 것처럼 추웠다. 냉기가 냉동 가스실처럼 흘렀으며 입이 덜덜 떨려서 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마저 들렸다.


  “함고동 씨, 당신은 지금 몹시 추워하고 있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의 품에 안기십시오. 전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어서 추위는 막을 수 있습니다. 히터를 고치는 동안 이쪽으로 와서 기대십시오. 그리 따뜻하지는 않더라도 춥지는 않을 겁니다.”그리즐리는 양팔을 살짝 벌렸다.


 그는 내심 고민이 되었다. 곰에게는 동물의 냄새가 심하게 날 것인데 그 비린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이며, 비린내가 난다고 손가락으로 코를 막으면 무례하게 보일 것이다. 게다가 곰인데 자신에게 무슨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주둥이가 툭 튀어나와서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저 입안에는 연어도 순식간에 찢어버리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을 것이고 마음만 먹으면 나 같은 것은 한입에 물어뜯을 것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나를 먹기 위해 곰이 하는 연극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열차 안은 너무 추웠다. 냉동고에서 얼어 죽는 사람이 가끔 뉴스에 나왔는데 그 기사의 주인공이 되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의 사고가 돌아가기 전에 먼저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체감하는 추위는 태어나서 난생처음이었다. 극심한 고통이 동반되는 추위였다. 발가벗고 얼음 바위의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처럼 너무 추웠다. 고추는 얼어서 짜부라 들었고 치아는 서로 부딪혀 깨질 것만 같았다.


 그는 그리즐리를 어렵게 고개를 들어서 쳐다보았다. 고개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왜인지 그리즐리는 웃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몸을 움직여 그리즐리의 품에 들어갔다. 품에 안기는 순간 칼바람 같은 몹쓸 추위가 단절되어 버렸다. 그리즐리의 품은 오랫동안 방에 불을 지핀 아랫목처럼 따뜻하고 아늑했다.


 아아 이것이 진짜 안온감이다. 무엇보다 포근했다. 냄새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의 몸을 감싸는 그리즐리 털의 감촉이 유난히 따뜻했다. 약간 거친 듯 털은 하나하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그의 연약한 몸뚱이를 데워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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