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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Sep 26. 2022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 17

소설

17


  “부탁이니 저처럼 아주 크게 외쳐주세요. 함고동 씨. 마노스!”


  “마노스!”


  그리즐리는 손에 빛이 나는 포자를 만들어서 괄태충의 아가리 속을 향해 던졌다. 괄태충은 점액질을 다시 발사했고 그리즐리는 그를 안고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갈락토만난!”그리즐리가 외쳤다.


  “갈락토만난!”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즐리는 손 모양을 또 한 번, 기를 모으는 포즈를 취하더니 빛의 포자를 괄태충에게 던졌다.


  “상아야자만난!”그리즐리가 쩌렁한 소리로 외쳤다.


  “상아야자만난!”그가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목이 아프고 눈이 따끔했다.


  괄태충의 아가리 속으로 빛의 포자가 들어갔다. 그러더니 아까와는 다르게 괄태충의 몸이 심하게 요동을 쳤다. 급성 맹장염에 걸리면 저렇게 된다. 그리즐리는 그래 됐어!라고 하더니 다시 한번 손 모양을 희귀하게 움직였다.


  “곤약만난!”


  “곤약만난!”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목이 갈라져라 큰 소리로 그리즐리를 따라 했다. 그리즐리가 지속적으로 괄태충의 아가리 속으로 빛의 포자를 던졌다. 괄태충은 끄아아아악하는 듣기 싫은 소리와 역겨운 냄새를 심하게 풍기더니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서서히 굳어졌다. 10분쯤 지나니 괄태충의 몸이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리즐리 씨, 그것이 무엇입니까.”그는 이제 힘이 다 빠져버렸다.


  “이것은 글루코만난의 종류인데 분자량의 100만 분의 일로 된 고분자 화합물로 된 소화액입니다. 저 녀석도 생명이 있는지라 죽이지는 못하지만 저놈의 몸속에 소화액을 투화해서 몸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겁니다. 지금 저놈의 몸이 가수분해가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그리즐리도 힘이 드는지 숨을 헐떡거렸다. 쉭쉭 거리는 소리가 괄태충에게서 들렸다.


  “그런데 저놈을 가수 분해시키는 일은 나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함고동 씨 당신이 같이 주문을 외워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엣? 그런 말도 안 되는…….”


  “정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만화 같은 주문을 누가 같이 외쳐주겠습니까. 그것은 오로지 나를 믿어준 당신의 용기 때문입니다. 주문은 두 명이 선창과 후창을 했을 때 비로소 크게 발휘되는 주문입니다. ‘엘파바’에게 배워온 주문입니다.” 그리즐리는 씩씩하게 그에게 말했다.


  엘파바?


  이 단어를 생각하는 순간에 그는 정강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입에서 으윽 하는 소리가 자연스레 새어 나왔다. 다리는 점액이 묻은 부분이 벌겋게 되는가 싶더니 구멍이 날 정도로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리즐리는 털 속에서 무엇인가 꺼내서 그의 다리에 난 상처에 발랐다. 살갗이 타들어가는 것은 멈췄지만 그는 심한 오한을 느꼈다. 얼굴에서 식은땀이 계속 흘렀다.


  “저기, 그리즐리 씨, 돌은? 돌은 어디 있나요?”


  “역시 당신은 본분을 잊지 않았군요. 자 보십시오.”


  그리즐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괄태충의 몸은 점점 작아져서 뱃속에 들어있던, 인간의 머리통만 한 돌이 나타났다. 검은색의 차돌처럼 반질거리는 아주 예쁜 돌이었다. 괴물 같았던 괄태충의 모습은 여느 민달팽이와 같아졌다. 그리즐리는 작아진 민달팽이를 가지고 있던 작은 유리병에 넣어서 뚜껑을 닫고 자신의 털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리즐리의 털 속에는 무슨 장치가 있을까. 그리즐리는 돌을 집어 들었다.


  “이제 나라를 구한 건가요? 그리즐리 씨?”그는 오한에 몸이 벌벌 떨렸고 정신도 가물거렸다.


  “그래요, 당신 덕분입니다. 함고동 씨. 당신이 우리나라와 당신네 나라를 구했습니다. 당신은 진정한 영웅입니다.”


  영웅? 헛헛했다. 정신이 가물거려 눈앞도 흐렸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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