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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14.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2

1장 당일



2.

 마동은 조깅을 할 때에는 타인의 상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장점이라고 하면 그저 달릴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없다. 누구와 같이 운동을 하는 것도 마동은 썩 좋아하지 않았다. 달릴 때면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똑바로 앞을 보고 보폭을 맞춰가며 시곗바늘처럼 달려갈 뿐이었다. 누군가 넘어져 있다 해도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그냥 지나칠 뿐이었다. 타인의 삶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간섭도 하기 싫어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태양이 떠있는 낮에 달릴 수 있다는 것도 즐거웠지만 어두운 밤에 달빛을 받으며 조깅코스를 달리는 것이 꽤 매력적이고 터프하며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든 달이 떠 있는 밤에 조깅을 하는 것이 현재는 마음에 들었다.


 달리면서 스치는 모든 소리를 차단했다. 무형의 파티션을 만들어서 잡음을 막는다. 오직 달리는 것에 집중을 한다. 그러려면 조깅코스로 달려야 한다. 자동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달린다면 소음이 많이 존재하기에 이런저런 소리를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다. 소리에 예민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소리라는 것은 의지와는 무관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마치 발사기와 흡사했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들으며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와 있는 것이다. 달릴 때는 오로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을 뿐이다. 음악은 하나의 운율이 되어서 머릿속에 여러 개의 기호로 배열된다. 들리는 음악을 기호로 나열하고 나뉘어서 균형을 잡아 놓고 머릿속에 넣어두면 회사에서 작업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음악을 기호로 배열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또 어떠한 특정적인 음악, 요컨대 프로그레시브나 아방가르드 음악이라고 해서 반드시 기호로 배열되는 것도 아니었다. 설명하기는 애매하지만 기호화가 되는 음악이 존재했고 그렇지 않은 음악도 존재했다. 그것은 어느 날 문득 다가오는 숙명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마동의 입장에서 그것은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쉽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리듬이 흡수되는 것이다.


 여름밤의 공기는 후텁지근하지만 그만의 매력이 있고 여름밤은 깊이라든가 색채가 결여되어 있어서 꼭 다른 세계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마동만이 그런 타성에 젖어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모호한 관념의 여름밤에 마음껏 조깅을 할 수 있는 이 나라에, 그리고 이 도시에 조금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 역시 막연한 것이다.


 여름의 기운이 한반도로 몰려올 때면 겨우내 스산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난 강변의 조깅코스에는 새벽까지 걷거나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매일매일 보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사람들이 너무 없다. 이상했다. 이렇게 사람들이 없다니. 강변의 조깅코스로 우르르 나와야 할 사람들의 모습이 초췌하리만치 보이지 않았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전부 우리 안으로 들어가 버린, 점심을 먹고 난 후 5월의 오후 2시처럼 조깅코스가 텅 빈 공간 같았다. 뭐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잘 된 거야. 마동은 그렇게 생각했다.


 더 편안하게 달리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마동이 달리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조깅코스에 20대는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남녀들이었고 그 모습이 보기에 나쁘다거나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하나의 어떤 의식처럼 느껴졌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처럼. 아마도 2, 30대는 대부분 현실에서 시간을 마음 놓고 쪼개서 운동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모두 실내체육관 같은 곳을 찾는 이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빠른 시간에 최대한 효과를 봐야 한다. 시간이나 폼을 들여 꾸준하고 밀도 있게 무엇을 생산해내는 것에는 힘겨워했다. 음식도 빨리 나와야 하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도 빨리 인화가 되어야 한다. 빨리되지 않는 곳은 도태되어 버리고 만다. 배달은 마땅히 십 분이 넘어가면 사람들이 화를 냈고, 약속시간을 어긴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안 좋은 소리를 뱉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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