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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1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

1장 당일



3.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꾸준하게 해야 하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조깅 따위는 20대에서는 찾을 수 없는 운동처럼 되었다. 시간을 오래 두고 따분하게 한두 시간씩 달릴 수 있는 사람들은 백 명 중에 고작 한두 명 정도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마동의 생각이었다. 모든 20대들이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마동은 여기 조깅코스를 매일매일 달리고 있지만 마동을 제외하고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50대 이상의 남자들은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소화를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고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족들(라고 해봐야 아내 정도)과 함께 강변의 조깅코스를 삼사십 분 정도 운동을 했다. 그들에게는 과하다 싶을 만큼 운동을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이 짐(gym) 같은 곳에서 땀을 있는 대로 쏟아내며 지나칠 정도로 안동을 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느릿느릿, 천천히 걷거나 달렸다. 마동은 자신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을 하며 달릴 수 있을 때 마음껏 달려놓자고 늘 생각했다. 과유불급을 알고 있는 나이 때의 사람들은 운동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운동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동은 역시 타인의 일이기 때문에 조깅코스에 나와서 느릿느릿 운동을 하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오늘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넓은 조깅코스에 사람들이 없으니 옷을 다 벗고 공용 수영장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달리는 흐름을 끊어 버리는 방해자들이기는 하지만 늘 있어야 하는 무엇인가가 소거되어버리면 일반적이지 않는 기이함이 들어버리고 만다. 마침 저 앞에 네 명의 아주머니들이 조깅코스에서 일렬로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일렬로,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으면 마동은 달리는 속도를 줄여 그들을 지나쳐 빠져 나가서 다시 달려야 한다. 조깅코스에서 가끔 마주하는 일이다. 달리는 흐름이 끊어지고 아주머니 무리를 돌아서 다시 박차를 가하고 달리기까지는 묘한 불편함이 생성된다. 아주머니들은 이타적이지 않다.


 마동은 언젠가 프레젠테이션을 조용히 준비하려 오전 시간에 카페에 들어갔을 때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들이 온 적이 있었다. 이 나라는 점점 낮아지는 출생률에 곤란함을 드러내고 정부는 사람들에게 출산장려를 억지로 권하며 마치 그에 떠밀려 출산을 한 젊은 엄마들은 벼슬을 단 모습을 지닌 여성들이 더러 있었다. 아이가 아무리 카페 안을 시끄럽게 떠들고 다녀도 아이 엄마는 미안한 구석이 없다. 커피를 쏟으면 아이 엄마는 와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얼굴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아이가 그런 건데 이해해 줄 수 있지? 하는 눈빛이 역력하다.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곳을 떠나는데 등 뒤로 아이 엄마는 같이 온 일행에게, 등을 보이고 나가는 마동을 되레 경멸하는 목소리가 먼지 낀 시골길처럼 남았다.


 조깅코스에서 한 줄로 서서 천천히 무리 지어 걸어가는 아주머니들도 그런 면에서 보면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주머니들의 평범함을 거부하는 행동들은 우리가 주위에서 많이 듣고 봐 온 터였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아크로바틱 한 행동에 비하면 조깅코스에 일렬로 천천히 걸어가는 아주머니들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어떤 대회의 등수에는 들지 못할 것이다. 마동에게 그런 부분은 지나치는 사소한 불편함일 뿐이다. 앞으로 과학이니 의학이니 하는 부분이 얼마나 발전을 거듭할지는 몰라도 유기체인 인간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힘들 것이다. 타인의 불편함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어떤 건지 알려주고 싶지만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니까, 하며 그저 넘어가는 것뿐이다. 말을 섞다 보면 의도하지 않는 언어가 입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그러면 그것대로 그만의 힘을 발휘해 상대방을 훼손시키기도 한다. 그런 모습은 현재 뉴스의 일면을 장식하거나 매일 보도될 정도로 많아졌다. 조깅코스에서 이런 종류의 불편함은 그저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일렬로 죽 걸어가는 아주머니들을 피해 가려면 꾸준하게 달리던 행위를 어찌 되었던 잠시 포기하고 그 사람들을 비켜 가야 한다. 그럴 때면 무엇인가 끊어진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만 원짜리로 된 오백만 원의 뭉치를 손으로 흥겹게 세다가 이백삼십만 원에서 끊어져 다시 세야 하는 허탈함도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어지는 한 세계가 끝나버리는 묘한 기분에 휩싸여서 별로였다. 아주 잠깐 짜증이 나지만 그것뿐이다. 잠깐의 응어리를 참아내면 되는 것이다. 그런 아주머니 무리가 반갑기까지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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