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
밤의 세계란 무엇일까.
밤은 평온한 세계다.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아이들도 밤에는 고요하게 잠이 든다. 그렇게 떠들어대던 정치인들도 밤이면 조용하게 잠을 잘 뿐이다. 대학병원의 내과 병동 역시 밤에는 가래 끓는 소리 없이 조용하게 잠이 든다. 밤이란 세상의 고요를 책임지는 세계, 적요와 적막이 있어 아름다운 세계다. 인간은 밤에 이런 평온한 고요 속에서 보낸다 고요란 인간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갈증은 이런 밤의 세계에 잠들지 못하게 했다. 고요와 적요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했다. 소리가 잠의 세계로 가는 것을 방해한다. 쿵 쾅 쿵 쾅. 누워있지만 소리 때문에 잠이 들 수 없다. 눈을 감았지만 눈앞에 하얗게 보였다. 눈을 감았으되 감지 못하는 눈. 소리가 들렸다. 쿵 쾅 쿵 쾅하는 소리가.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심각한 갈증을 느끼고부터 몸속에 갈증을 요구하는 기관이 하나 생겨난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폐 근처에 작은 기관이 생기더니 점점 자라나서 자리를 잡고 완전히 신체 내부의 기관이 되어 물을 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아침이 되기 전에 몰골이 조금이라도 괜찮을 때 편의점으로 가서 생수를 잔뜩 사 왔다. 매일 새벽에 생수를 왕창 사들고 오니 아르바이트하는 사람과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나를 편견 없이 대했다. 편의점을 이용하기 전에는 아침이 되었을 때 슈퍼가 문을 열면 거기서 생수를 사 왔다. 편의점보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새 갈증에 시달리다 잠을 못 잔 나의 초췌한 몰골은 단지 잠을 못 잔 사람 같지 않았다. 마치 흙구덩이에서 갓 나온 인간 두더지 같은 모습이었다. 나의 그런 몰골은 슈퍼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다. 직원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들에게 분노가 일었다. 그저 남들과 다르게 보이면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않는데 몹쓸 것을 보는 그런 경멸의 눈빛들. 밤의 시간이 좋았다. 깜깜하기 때문이다. 갈증은 이런 깜깜함 속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았다.
오늘은 갈증이 덜 하다. 밤에 좀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깜깜한 밤 속을 돌아다니는 건 생각보다 근사한 일이었다. 그녀가 집으로 와서 샤워를 하고 매끈한 피부를 나에게 밀착시키고 우리는 한 시간 가량 침대 시트를 땀으로 적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