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당일
12.
그동안 여유가 없는 현대인들을 마동은 많이 봐왔다.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상상력의 부재였다. 상상하는 것을 살아있는 지렁이를 먹는 것만큼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서 상상력이라곤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바쁜 일상, 그 속에서 상상이니 공상이니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여유는 없다. 어쩌다 시간이 남아서 여유가 생긴다 해도 사람들은 대체로 여유를 여유롭지 못하게 사용할 뿐이었다. 여유가 생겨도 손에 들어온 모래가 빠져나가듯 종식시키고 만다. 현대인은 삶이라는 무게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지배당하며 그 속에서 주어진 ‘지배당하는 여유’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마동은 사람들과는 좀 달랐다. 마동이 하는 일도 특수성을 띠었고 보통 멍하게 있거나 꽤 여러 가지의 세계에 대해서 상상을 하는 것을 보면 어딘가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마동에게 사람들에 비해 다른 점은 확실하게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마동은 타인 속에 교집합 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삶이라는 것은 자꾸만 인간을 쓰러트린다. 순간 잘못된 선택으로 크레바스 끝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크레바스 끝에서 발을 잘못 디뎌 밑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다시 살아 올라오는 사람도 있다. 굴복하지 않으려면 삶의 무게에 당당해져야 한다고 어디에서건 떠들어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상상력이 소거되는 순간 무엇인가에 끌려가는 생활을 할 뿐이다. 24시간 중에 한 시간 이상을 달릴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마동에게 주어진 여유를 행복으로 누리게 하는 것이다. 달리는 동안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다 보면 아주머니들의 무리를 제외하고 또 하나 거슬리는 것은 조깅코스가 강변이다 보니 주위에 나무, 강 둔치에 자라는 풀이 이룬 풀숲이 강을 따라 죽 나 있는데 그 속에 살고 있는 하루살이나 날파리가 많다. 달리면서 호흡을 하다 보면 입을 통해서 목구멍에 그대로 날벌레가 들어와서 불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조깅의 방해자들이다. 날파리 한 마리 따위 입으로 들어가는 게 뭐 큰 대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느낌은 기이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종류의 음식이 치아를 통해서 여러 갈래갈래 씹혀 분해되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고 곧바로 입안에 들어간 벌레가, 생긴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은 몹시 이상한 일이다. 하루살이는 그대로 목으로 들어와서 기도의 벽에 찰싹 달라붙어버리는데 잔기침을 유발했다. 달리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다. 기침을 할 때에는 목구멍에 붙어 있는 날파리 날개 가루가 온몸으로 번지는 착각이 드는 기분이었다. 이 역시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마동 역시 조깅을 할 때 입을 약간 벌리고 숨을 쉰다. 들숨과 날숨을 조절하면서 달리다 보면 작은 날벌레가 목구멍에 그대로 붙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무릎에 양손을 대고 잠시 쉬면서 기침을 한다. 달리는 것은 여지없이 중지해야 한다. 그렇게 잠시 멈춰서 자세를 다듬는 동안 흘린 땀은 모기들을 불러들인다. 잠깐 동안 운동화의 끈을 묶고 있는 와중에 모기들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몰려들어 주로 접히는 부분의 피를 빤다. 무릎의 안쪽이라든가, 목덜미 또는 팔꿈치 반대쪽 같은 곳.
맛있게 피를 빨고 달아나는 바람에 어떤 날은 따끔하기까지 했다. 집에 있는 모기와는 다르다. 요즘은 모기를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모기는 예전에 없던 무서운 균을 옮기는 이동매체가 되었다. 분명 서슬이 퍼렇고 추운 바람이 부는 겨울보다는 여름이 조깅하기 에는 더없이 괜찮은 환경임에는 분명했다. 하지만 괜찮은 계절임에도 호러블 한 것이나 미저러블 한 것들은 끊임없이 마동을 괴롭혔다. 혹독한 추위가 세상을 뒤덮은 겨울이 되면 야외의 벌레들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절지류처럼 말이다. 그것을 조화라 부른다면 그것이 균형인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