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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25.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3

1장 당일



13.

 하지만 모기가 없다 하여도 추위가 사람의 등을 구부리게 만드는 겨울은 마동에게는 내키지 않는 계절이었다. 두꺼운 트레이닝복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꾸준하게 뛰었다가 잠시 쉬는 동안 다시 몸이 식어버리는 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에 와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뜨거운 물이라는 것이 목욕탕처럼 바로 콸콸 나오지 않고 시간을 들여야 서서히 뜨거워지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입김이 많이 나와서 착용하는 안경에 성애가 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연은 인간에게 순수한 이치를 가르친다. 좋아하는 것 하나를 얻으면 싫어하는 것 하나를 가져와야 한다. 역시 이것을 균형이라 부른다면 균형이다.



 오늘은 장마라고 해도 사람이 너무 없다. 인간 소멸에 가까웠다. 장마기간에 사람이 이렇게 없었는지 알 수는 없다. 작년, 재작년 여름의 장마기간에도 이랬었나 하는 생각을 더듬어 보지만 생각의 끈은 누군가 올해 초에서 깔끔하게 딱 잘라 놓아서 그 생각의 끝에 마동의 기억은 도달하지 못했다. 그저 장마기간이라서 사람들이 없는 것이라는 것이 이상하지만 그렇게 단정 지었다. 기이하지만 그렇게 생각을 굳혔다. 쉽게 포기하는 것도 생활하는데 꽤 필요한 부분이었다. 드문 일이지만 항상 예외는 있는 법이다.


 마동은 평소에 쓸데없는 생각들을 많이 한다. 어찌 되었던 강변으로 불어오는 단정 할 수 없는 치누크 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달렸다. 그래 봐야 빠르게 걷는 것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달릴 뿐이었다. 달리는데 앞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사람은 여자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치마를 입고 머리가 길었다. 뒷모습만 봐도 대번에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입고 있는 옷이 긴팔에다가 치마까지 아주 길었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치마는 길었다. 여름인데 긴팔을 입고 술이 취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비틀거릴 정도로 힘이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


 걸음걸이는 느릿느릿했으며 춤을 추며 걷는다고 하기에도 어딘가 모자람이 많은 걸음 걸이었다. 저렇게 걸어가는 모습의 사람은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길거리 마임을 하는 예술인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뒷모습은 마치 연극단원의 배우의 움직임 같았다. 지극히 뒷모습만 보여서 단지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마동은 여자를 지나치면서 쓱 한 번 쳐다보고는 앞으로 내달려 나갔다. 마동은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타입이 아니기 때문에 이 무더운 여름날에 긴팔에 긴치마의 옷을 입고 조깅코스를 춤을 추듯 흐느적 걸어가고 있다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평소에 비해 오늘은 유난히 습하고 눈에 들어오는 시각적인 풍경이 조금은 단조롭고 다른 날에 비해 달랐다. 바람 역시 기시감을 자꾸 불러일으켰고 묘한 기분을 자아냈다. 습한 공기를 폐에 집어넣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치누크가 자아내는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가서 마음속에서는 곰삭은 마음이 일어나는 기분마저 들었다. 작은 소용돌이처럼 마음이 일렁거렸다. 가슴이 뛰는 것과는 달랐다. 마동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늘 북적이던 조깅코스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 전혀 들어오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매일 보는 환경이 기이하게 달라지거나, 개체수가 상상 이상으로 많거나 이하가 되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불러들인다.


 그 순간 단조로움과 권태라는 고삐가 사람들의 어깨에 올라타면서 괴기한 모습으로 바뀌며 사람들을 땅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모습이 시야에 확 드러났다. 그리고 곧 암흑이 세계를 뒤덮어 버리는 장면까지 시야에 보였다. 무서운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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