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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26.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4

1장 당일



14.

 이것은 도대체 어떤 환영일까.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마동은 이런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을 애써 하지 않았다. 전경이라고 불리는 시야가 만들어낸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섬뜩했다. 사람들의 어깨에 올라탄 그것들은 목이 없는 몸이 전부였다. 소름이 돋았다. 때를 가리지 않고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처럼 몸의 털이 바짝 솟구치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것이 순식간에 보였다가 사라졌다. 세상이 암흑으로 뒤덮이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눈앞에 그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다.


 만약 지금 내가 본 환영이 실제의 현실이고, 달리고 있는 지금이 현실이 아니라 다른 편의 세계라면? 마동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한 번씩 마동은 세계가 암흑으로 바뀌는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하는 경험을 했다. 마동의 의지가 아니었다. 가만히 있으면 다가오는 계절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부자연스러운 현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머릿속에서 돌연 나타났다가 희미하게 보였다가 사라졌을 뿐이다, 그동안에는. 이렇게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몹시 지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눈앞에 환영처럼 가끔씩 보이는 다른 세계는 근래에 들어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지금의 세계가 전부 암흑으로 바뀌는 모습이었다. 세계가 어둠으로 종식되기 전에 마동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은 마동을 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어딘가 이상한 이야기만 자꾸 한다. 글자로 치마를 만들었다느니, 캔 깡통의 맛은 달다고 하는 말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동과 이야기를 하면서 마동의 눈을 보는 것 같은데 자세하게 보면 눈 뒤의 어느 지점을 응시하며 말을 한다. 마동은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씩 겁이 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마동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눈에서 약간 떨어진 밑이나 옆의 어디를 계속 보며 이상한 말을 쏟아낸다. 마동은 다른 사람에게 간다. 하지만 다른 사람 역시 마동의 눈을 보지 않고 어딘가를 응시하며 이상한 말을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이상해진다. 그리고 저 멀리서 하늘이 점점 검은색으로 뒤덮인다. 바뀐 세계의 암흑은 물엿처럼 찐득하고 무서운 검은색이다. 하루에 한 번, 내지는 이틀에 한 번씩 무의식 중에 그런 모습이 머리에 떠오르고 눈앞에 나타났다.

    

 이계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아니다. 마동이 그동안 생각했던 다른 세계는 적어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환상의 곳, 오즈의 먼치킨 마을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암흑이 온 천지를 뒤덮는 세계는 아니었다. 비록 우울하지만 엘리스가 재버워키를 물리친 마을의 풍경 정도라면 괜찮았다. 그렇지만 마동의 눈앞에 펼쳐졌다 사라진 광경은 무참했고 무차별적인 폭력이 만들어 놓은 세계였다. 폭력에는 당연하게도 정당성은 배제되어 있었고 이유나 폭력의 강도도 알 수 없었다. 마동이 바라는 이계의 모습은 전혀 없었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모자장수처럼 미쳐야만 해’ 체셔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미쳐가고 있는 것일까.


 체셔의 말은 분명 이상한 나라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지금, 이 현재를 살아가는데도 미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미쳐야만 한다.     


 여름은 여름이었다. 달리기 시작한 지 십오 분을 넘어가면서 땀이 목덜미를 내려와 가슴을 타고 가슴골로 흘러내렸다. 액체라는 것은 그 종류를 막론하고 점성과 성분을 떠나서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 점점 몸에 텐션이 가해지면서 달리는 속도를 조금 더 냈다. 들숨과 날숨을 조절해가며 마동은 사람이 없는 조깅코스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어폰을 통해 폴리 시달의 노래가 끝이 나고 안타까운 비비 킹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십 여분을 달렸다. 하늘은 속살이 비치는 에이프런 속옷처럼 구름이 엷었다. 엷은 구름 속에 또 다른 구름이 보이고 그 속에 또 다른 구름이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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