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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Feb 28.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16

1장 당일


16.

 소설가들의 첫 소설은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의 한가운데를 지나 새벽녘에 대부분 탄생되었다. 겨울의 깊은 밤, 산울림의 ‘독백’을 들으면 고독의 실크로드 속에 발바닥을 디디는 기분이 든다. 산울림의 독백을 통해 내려놓는다는 것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다. 밤은 그것을 가능케 한다. 고독으로의 항해는 밤이 깊을수록 방향이 뚜렷해지고 밤의 정취 속에서 자아는 밤으로 녹아들어 버린다. 밤이 다가와 고독해지는 것은 지극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라고 조용히 읊어 보기도 한다. 밤이 어깨를 두드려주며 오늘은 수고했구나, 라며 괜찮다고 끊임없이 속삭여주고 그 힘을 얻어 밤새도록 깨어있고 싶지만 마법에 걸린 공주처럼 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잠들어 버리고 사람들은 꿈을 꾼다. 밤이 무서워 도시를 환하게 불 밝히지 마라고 하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밤의 어둠은 무서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죽음에 맞닿기 직전까지 같이 가야 할, 가족보다 더 친밀한, 이불 같은 관념이다. 글귀가 있던 책에는 도시가 자아내는 불빛이 강하여 그 존재를 돋보이려 해도 밤은 제 몫을 확실하게 해낸다고 했다. 어둡다고 말할 수 있는 밤이 새삼 정겨웠다. 밤이 깊어지면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나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낮게 드리운다. 작은 난쟁이들이 타협점을 찾으려 올라오고 밤하늘의 별은 그들의 앞을 비춰줄 것이다. 밤은 여름보다 겨울이 깊이가 더 있어서 겨울밤에 더 강하게 끌린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나는 여름밤이 좋다. 마동은 늘 그렇게 생각했다. 낮 동안은 느껴볼 수 없는 은유를 여름밤이 되면 절실하게 갈구하고 있었다. 밤에는 확실하게 밤의 언어가 존재한다.


 마동은 밤이 주는 아름다운 색채를 머릿속에서 상기하며 조깅코스를 달려 앞에 보이는 검은 물체 쪽으로 달려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모습은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달리기를 출발하여 조깅코스의 시작점을 지나면서 봤던 긴팔의 긴치마를 입은 그 여자였다.


 마동은 머리를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조깅을 하다 보면 아무리 조깅화의 끈을 질끈 동여매어도 신발 안으로 미세한 돌멩이나 먼지 덩어리가 들어온다. 그것은 매일매일 밥을 먹듯 조깅을 할 때마다 조깅 슈즈 속으로 무례하게 들어왔다. 신발안의 작은 돌멩이들을 무시하고 그냥 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마동은 그렇지 못한 축에 속했다. 마땅하겠지만 달릴 때 운동화 속으로 들어온 아주 작은 돌멩이는 신경을 건드렸다. 달리는데 발바닥에 가시 같은 자극을 주는 그 작은 돌멩이 때문에 제대로 달리는 행위에 집중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달리는 것을 멈추고 운동화를 벗어서 신발을 털어냈다. 운동화 끈을 풀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달리는 패턴이 끊어져버린다. 몸을 풀어주는 사이 마동보다 조금 뒤에서 따라오던 러너들이 마동을 앞질러 저만큼 앞서가는 뒷모습을 보며 이것이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멈춰있으면 누군가가 나를 앞질러 가버리는 인생 따위의 법칙 같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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