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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22. 2023

내 사랑 백석

김자야 에세이


청진동 집에는 친구 허준, 정근양이 거의 매일 놀러 오다시피 하였다. 백석을 포함해 이 세 사람이 늘 붙어 다니는 걸 보고 자야는 이렇게 말했다.


"세 분은 さんばがらす 같아요"


이 말은 세 마리의 까마귀, 즉 '삼우오'를 일본 말로 표현한 것인데, 매우 절친한 친구 삼총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청진동 집에는 함대훈과 아동문학가 방정환, 영화감독 박기채도 가끔씩 들렀다. 이 무렵 이상은 종로 우미관 뒤편에서 기생 금홍과 살림을 차려 동거를 하고 있었다. 자야는 내 사랑 백석에서 남신주의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아내와 같이 갈던 집이 바로 청진동 집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백석에게 자야는 아내보다 연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 내 사랑 백석 중에서


당시에 백석은 방응모의 지원을 받아 이강섭, 문동표, 정근양 등과 함께 당시 일본에서 가장 학비가 비싸다는 아오야마가쿠인 영어 사범과에 다닐 수가 있었다. 방응모는 일제강점기 조선일보 사장이었다. 9대 조선일보 사주를 역임했다.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알려져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처음에는 만해에게 독립자금을 대주는 등 반일이었는데 일본의 총기사업에 참여하면서 친일언론사가 되었다고 나는 알고 있는데 확실하지 않으니 궁금한 사람은 찾아보기 바람.


자야가 마지막 순간까지 쓴 에세이 ‘내 사랑 백석’은 소설에 가까운 형식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절하며 애틋하고 몹시 사랑스럽다. 백석은 자야를 사랑할 때 빛나는 시가 나왔던 것 같다. 백석이 좋아한 릴케 역시 그랬다. 릴케도 연인 루(살로메)를 사랑했을 때 가장 찬란한 시가 나왔다. 릴케는 루가 아니면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루를 사랑했다. 루를 사랑하려면 경쟁 상대가 만만찮았다. 신을 죽여 버린 니체도,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까지. 물론 프로이트는 릴케와 헤어진 후 만났지만. 루는 릴케보다 14살 누나였다.


보들레르 역시 흑백혼혈 잔 뒤발을 사랑할 때 ‘악의 꽃’ 중 ‘레테’를 써냈다. 이 시는 사람을 중독시켜 죽음으로 이끈다 하여 프랑스에서 금지시키시도 했다. 보들레르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시 6편을 삭제하게 된다. 보들레르의 시는 현재의 20대 문학도들까지 가장 사랑하는 시로 칭송받고 있다. 단테 역시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때, 또는 그녀와 이야기를 하거나 그녀를 떠올릴 때 찬란한 글이 나왔다.


사랑이란 이토록 위대하고 위대하고 정말 위대하여라. 였다. 사랑은 한 단어로 충분한데 한 문장으로 모자라며 한 권의 책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하고 이상한 관념인 것이다. 백석과 자야는 이 기묘하고 이상한 감정의 사랑을 깊고 깊게 했다.


자야는 이 에세이를 다 쓰고 난 후 죽음을 맞이했다. 자야는 대원각을 법정에게 조건 없이 건네준다.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은 자야는 법정을 찾아가 대원각 요정의 터 7천 평과 40여 채의 건물을 시주하니 절을 세워달라고 했다. 법정은 거절했으나, 10년이 지난 후 1995년에 와서 결국 자야의 간청을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등록하여 길상사를 세운다. 이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법정을 무소유를 주장하더니 돈을 받아 처먹었다며 욕을 하기도 했다. 대원각은 길상사가 되었고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이 되었다. 자야는 권번 출신으로 16살에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되었다. 자야는 문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대원각의 권번출신들을 전부 공부를 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말년에 자야의 백석과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백석 전문가들 중에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백석 연구가 송준은 살아생전 김영한(김자야의 본명) 여사를 인터뷰했는데 백석이 유명해지니 관계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을 했다. 또 백석 전문가 이자 영남대 교수 이동순은 백색과 김영한의 사랑은 실제가 아니며, 조작되고 윤색된 이야기라고 기고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백석은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보고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물론 백석과의 관계는 백 퍼센트 자야의 주장이고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지금 현재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늘 선택의 문턱에서 고민을 한다. 하지만 선택은 해야 하고 거기에 따라오는 결과는 자신의 몫이자 감당해야 한다. 어떻든 소설만큼 재미있는 에세이 ‘내 사랑 백석’이었다.



백석의 시에는 미각이 온통 살아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200



오늘의 선곡은 트래비스의 이 노래 https://youtu.be/UeCcuH-EsuM

Tr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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