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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an 26. 2023

우편함에 우편물이 잔뜩 꽂혀 있었다

일상다반사

집으로 들어가기 전 우편함을 확인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연진아.라고 나도 유행에 한 번 동참.


우편함에 반가운 우편물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이제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반가운 소식은 대체로 이메일로 받거나 휴대전화 메시지나 카톡으로 받을 뿐 편지 형식으로 받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우편으로 보내기에 아마 나 같은 아날로그 적인 인간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지 싶다.


우편함에 때가 되면 와서 꽂히는 우편물은 반가운 소식과는 거리가 멀다. 주로 세금납부라는 지로 용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금이 올해 들어 전부 올라서 가스비, 전기세가 작년보다 많이 나오게 되었다. 요즘 같은 한파에 난방을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음껏 켜고 지낼 수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 와 있다. 추장관은 서민들을 위해, 우리들을 위해, 서민인 나를 위해 세금을 100% 올리지 않고 70%만 올렸다는데, 하하하.


우편함에 꽂히는 반갑지 않은 세금 용지마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메일이나 휴대전화로 확인한다. 늦은 밤 집으로 올라가는 아파트 입구에서 우편함을 확인하는데 우편함만으로도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하며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1106호는 무슨 일일까. 어째서 우편물이 우편함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저리도 가득 채워져 있을까. 엘리베이터가 내려와서 내가 타기를 바라지만 타지 않고 한참을 서서 저 우편함을 쳐다보았다. 세금 영수증을 지로 용지로 받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많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들은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메일로 날아오는 편리함은 그들에게는 거부감으로 변했다. 그들은 살갑게 얼굴을 부비고 싶지만 이젠 그 방법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사람들이다. 손으로 들고 눈으로 눈으로 보는 세금확인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매 달 세금납부 우편물이 집으로 오는 날짜는 거의 정확하다. 1106호 사람은 내려가서 운동 겸 빼왔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모두에게 다가오는 무심한 그것이 하늘에서 자신에게도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사로 잡히면 우편물 가득한 우편함을 한참 서서 본다.


주차장에는 핸들을 돌려 바퀴가 비틀어져 주차된 차가 그 모습 그대로 거의 1년 동안 미동 없이 주차되어 있다. 몇 달 동안은 주인이 어디 여행이라도 갔나? 같은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이제 이 자동차의 주인은 아마 없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자동차라는 것은 생명이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명이 붙어있는 생명체처럼 대하는 물품이다. 애정을 가진다, 자신의 자동차에는. 그러니 생명과도 같은 자동차를 주차장에 핸들을 돌려 바퀴를 약간 틀어 놓고 어딘가 도망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동차는 오늘도 주인을 기다리지만 주인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타나지 않았다. 내일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저 우편함의 우편물도 언젠가는 없어지겠지. 그러나 누가 가져갈까. 도시라는 건 촘촘한 전기회로 같아서 아주 복잡하고 지능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을 것 같지만 그 회로를 타고 다니는 길은 개개인 각각이기 때문에 서로 만나거나 부딪칠 일이 없다. 달동네나 시골 같았으면 두 달만 우편물이 우편함에 꽂혀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이 집에 뭔 일 있나? 하며 안부를 물었을 것이다.


관심이 간섭이 된 지금은 촘촘한 도시 속에서 고독하고 외롭게 보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강변 공원에 사람들은 분명히 많이 있으나 그들은 서로에게 간섭하기를 꺼려한다. 어제는 조깅을 하다가 중간에서 몸을 풀고 있으니 줄을 놓쳐 강아지가 나에게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와서 안기고 얼굴을 핥았다. 주인은 연신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강아지를 너무 반갑게 맞이했다. 강아지는 어디 축축한 곳에 뒹굴었던지 온몸과 발바닥에 진흙이 묻어서 주인은 아주 난처해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세상 맑은 눈으로 혀를 내밀고 나에게 와서 안기고 꼬리를 흔드는데 저리 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1106호에 간섭을 하고 싶은 오늘, 오늘은 우편물이 사라졌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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