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
자리로 돌아오니 불안한 표정의 고객은 없었다. 나는 동료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도저히 오늘 안으로 대출받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던 고객이었다. 고객의 불안한 표정은 내가 흘린 피를 빨아먹었다. 더 깊고 더 정직한 불행을 하고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곧 진급이 될지도 모른다. 사소한 업무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신용등급이 안 되는 기업이나 고객에게 대출 서류를 내줘서는 안 된다. 그 고객은 나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안 되는 것이다. 동료는 나에게 고객의 일은 끝났다고만 했다. 나는 그 고객을 어떻게 보냈냐고 물었다. 동료는 잘 끝났다고 했다. 나는 궁금했다. 어떻게 돌려보냈는지.
다시 동료에게 물으려는데 다른 고객이 들어왔다. 할 수 없이 업무에 매달렸다. 나는 곧 진급이 있다. 동료는 열심히 일을 했다. 동료는 책상에 항상 휴대전화 화면을 켜 두고 카톡을 확인하면서 일을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처음 보는 동료의 모습이었다. 업무에 저토록 열을 올리다니. 동료도 진급을 염두에 두는 것일까. 아니다, 동료는 이번 진급에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아무튼 동료는 평소와는 다르게 아주 열심히 업무에만 몰두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에 들어와 욕조에 물을 받았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피곤이 좀 풀렸다.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욕조에 물이 차오르는 것이 좋다. 그걸 보는 것은 꼭 일탈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천천히, 조금씩, 느리게 큰 욕조에 물이 찰랑찰랑하게 차오르는 것이 꼭 인생을 보는 것 같았다.
인생 역시 천천히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들여 오를 수 있을 곳까지 올라간다. 그러나 대중목욕탕처럼 이미 욕조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건 별로다. 그래서 대중목욕탕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출장을 갈 때 여관이나 호텔의 욕조에 물이 차오르는 걸 보기 위해 출장업무를 보고 나면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재빨리 빠져나와 욕조에 물을 받고 물이 찰 때까지 앉아서 보는 그 간극의 시간을 즐긴다. 큰 즐거움이다. 순간적으로 물이 차오르는 것이 아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이 몸으로 차오는 그 기분. 정말 좋은 것이다.
그나저나 출장을 최근에는 언제 갔더라? 어디로 갔는지 생각이 금방 떠오르지도 않았다. 언제 갔는지, 어디로 갔었는지, 어떤 동료와 같이 갔는지 생각을 하다가 물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것을 보며 정신이 깜빡 사라질 뻔했다. 나는 놀라서 급하게 일어나려다 미끄러져 등이 욕조에 달았다. 순간이지만 정말 놀랐다. 이렇게 정신이 깜빡하다니. 욕조에 닿은 등이 따끔거렸다.
앗, 할 만큼 등이 몹시 따끔거렸다. 옷을 벗어서 거울에 등을 비쳐보니 가시가 박혀 있었다. 등의 어깨 쪽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가시는 뾰족하고 길고 가늘었다. 머리카락만큼 가늘고 길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빠져나온 가시일까. 쓰레기통에 버리려다 오후에 은행 화장실에서 휴지에 싼 가시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버리지 않고 보관 상자에 넣어 두었다.
아내를 불러 등에 연고를 발라 달라고 했다. 아내는 몸을 닦고 침대로 오라고 했다. 가시가 박혔던 피부를 어루만지며 가시가 어디에서 박혔냐고 물었다. 나도 알 수가 없다. 도대체 가시라니. 그것도 하리에 두 번이나. 아내는 연고를 발라주며 슬슬 아기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