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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r 19. 2020

변이 하는 세계와 이변의 사람들 35

2장 1일째


35.

 트윗: 멋진 친구, 감기 기운은 좀 어때? 난 이제 스트레칭으로 몸을 좀 풀고 내일을 위해서 스윗드림을 해야겠어. 몸조리 잘하라고 가드 블레스 유.


 소피는 신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며 트위터를 빠져나갔다. 마동도 소피에게 좋은 꿈을 꾸라는 인사를 하고 트위터를 빠져나왔다. 오늘은 세트메뉴를 다 먹지 못했다. 커피는 그럭저럭 한 잔 다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커피도 억지로 마시는 기운으로 마셨다. 커피도 평소의 맛이라는 것에서 벗어났다. 에그가 들어간 핫 잉글리시 머핀은 거의 다 남겨 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침식사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조금 철저하다 싶을 정도로 챙겨 먹는 편이었다. 고등학교 때 사고 이후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난 뒤 어쩌면 식습관이 바뀌어 버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이면에는 어머니의 변화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집에서 탕이나 국 같은 번거롭게 끓이는 음식은 하지 않았다. 탕반 문화가 발전한 한국음식에서 어머니는 국 요리를 빼버렸다. 명절에서도 탕국은 제사음식에서 제외되었다. 마동도 홀로 이 도시에서 생활을 하면서 배부르게 먹는 습관도 없었다.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로 음식을 섭취했을 뿐이다. 아침을 먹지 않을 때는 대체음식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습관을 들여 매일매일 조깅을 하듯이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도넛 전문점에서 이틀 동안 아침을 사 먹었으면 나머지는 대체로 신선한 샌드위치로 아침을 해결했다. 그곳에는 두부를 말려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파는데 좋은 맛을 내는 샌드위치다. 혼자서 생활을 하다 보면 끼니를 때우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를 찾게 된다. 주말에는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먹었다. 평일 아침에 조금 일찍 나오면 느긋하게 시간을 들여가며 샌드위치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 기쁨을 맛보는 것은 큰 수확이라 여겼다. 이렇게 머핀을 반이나 남기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입안이 마르고 혀의 감촉이 오늘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마동은 휴대전화를 꺼내 카메라를 터치하여 셀카 모드로 돌려 자신의 혀를 비추어 보았다. 육안으로 보이는 혀의 모습은 여자의 은밀한 부분의 속살처럼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딱히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전문가가 아니라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역시 감기라는 건.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오전에만 여러 개 나타났다. 던킨도넛 안에 리스트의 리베스트라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이 되어버린 연주곡이다. 이곳은 늘 클래식 곡이 조용하게 흘러나왔다. 마동이 낮보다 밤을 좋아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지만 리베스트라움은 여름밤에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했다. 밤에 듣는 피아노곡은 라면 위의 치즈가 녹아내리듯 마음을 녹여 버린다. 바다가 있는 이 도시의 여름밤을 달리다가 해안가에 갑자기 소나기가 무섭게 떨어지면 해안의 어느 곳의 차양 막에 서서 비를 바라보며 듣는 리베스트라움은 마동을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게 했다. 동시에 적극적으로 이율배반적인 욕망도 함께 불러일으켰다. 마동에게 그런 희열적인 감정의 머리를 들게 하는 연주곡이 리베스트라움이었다. 휴대전화기 속에는 백건우가 연주하는 버전의 곡이 들어 있었다. 물이 흘러가듯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


 여름의 끝자락에서 떨어지는 빗물은 마동을 조금 초조하게 만들었다. 여름의 끝에서 어깨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려면 내면의 세계와 싸워야 한다. 달리는 것을 잠시 멈추어서 음악을 들으며 어깨의 땀방울을 느끼면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결락에 몸서리를 쳤다. 여름을 지나 가을의 초입에 들어간 여름의 끝자락은 언제나 그렇다. 인간의 생로병사와는 관계없이 여름의 끝자락은 늘 비슷한 시기에 와서 비슷한 모습으로 가버리고 만다. 가버릴 때는 요만큼(손가락을 들어서)의 여지도 남겨놓지 않고 가져가 버리고 돌려주지 않는다. 그 와중에 소나기를 만나게 되면 마동은 가만히 서서 리베스트라움을 들으며 욕망의 근원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여름의 바다는 인파로 북적였지만 하늘에서 비가 시원하게 쏟아지면 삽시간에 고요하고 시끄럽지 않은 세계로 바뀌어 버린다. 무수히 많은 빗방울과 바다의 수면에 비가 낙하하여 소멸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마동은 그 모습이 만들어낸 경이로움에 빠져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다. 리베스트라움은 멈추지 않을 것처럼 흘러나왔다. 조용하게 시작하여 격정적인 부분의 연주가 나타났다가 사라져 가는 음률은 아주 오래 전의 애절한 남녀의 사랑을 떠올리게 했다. 사랑했지만 신분과 부조리에 의해 갈라서야만 했던 두 사람은 결국 남자가 먼저 죽음을 택하고 남자를 따라서 여자가 방 안에서 고요하게 죽어간다. 컴컴하고 티브이도 없는, 오로지 벽과 창문만 있고 작은 창으로 햇살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여자는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묘하게도 리베스트라움은 그런 스토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마동의 사고는 이미 가설의 세계로 들어와 버려 무의식에 빠져버린다. 마동은 상상 속의 남자와 여자에게 동화되어 간다. 도넛 전문에서 흘러나오는 리베스트라움을 들으며 생각의 늪으로 깊게 빠져들어 갔다가 음악이 바뀌고서야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다리의 힘이 풀리는 느낌이라 테이블을 손으로 한 번 잡아야 했다.


 환장하겠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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