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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May 02. 2023

24. 엄청난 비가 왔던 날

소설

        


 일찍 끝났다. 대대적인 홍수 때문이었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바람에 수업을 못하게 되었다. 대부분 우산 없이 왔다가 지속되는 폭우 때문에 부모님들이 우산을 들고 학교로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발목까지 물이 차는 운동장에서 공을 찼다. 공인지 빗물인지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공은 굴러가야 마땅하지만 바닥에 그대로 붙어 버렸다. 수중전은 그야말로 어떤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준다. 굉장한 경험이다. 홍수가 아니면 도저히 맛볼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메가데스의 음악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서 운동장의 물이 정강이까지 차올랐다. 우리는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화장실로 들어와서 주전자에 물을 받아서 대충 씻었다. 쿠르르릉 쏴아 하는 비가 오는 소리가 무섭게 들렸다. 메가데스의 백만 명의 죽음을 듣는 것 같았다.     


 그때 주전자를 하나 더 가지러 교실에 갔던 태형이가 달려와서는 터미네이터가 잡으러 온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태형이는 팬티만 입은 채 화장실에서 그대로 도망가 버렸다. 우리는 생각할 여지도 없이 태형이를 따라서 도망갔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터미네이터가 악어처럼 따라왔다. 우리는 흩어져야 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같이 복도를 달렸다. 흩어지면 꼭 터미네이터에게 잡힐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입고 있는 옷이 팬티만 걸친 상태라 흩어져도 어쩐지 손해를 본다는 본성이 강하게 작용했다.     


 우리는 달려서 방송부 옆의 물품실까지 가서 숨었다.


 “이 새끼들 왜 보내 줄 때 집에 안 가는 거야! 전화 오고 난리잖아 새끼들아. 잡히면 모두 정학이야 새끼들아!”


 터미네이터의 무시무시한 소리가 복도 끝까지 울려 퍼졌다.


 “씨발 좆됐다”라고 리처드 애쉬 크로포트를 닮은 태형이가 말했다. 담배냄새가 입에서 났다. 태형이는 이번에 정학을 맞으면 전학 내지는 퇴학이었다.


 우리는 차가운 물품실 뒤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서 20분을 그렇게 있었다. 팬티만 입고 물을 제대로 닦지 못해 시간이 갈수록 추위가 몸을 엄습해 왔다. 날개 잘린 파리처럼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근육이 좋은 태형이도, 하얀 살갗을 가진 상후도, 바짝 마른 효상이도, 모든 것을 글로 표현하는 기철이도, 학교 통인 진만이도, 수영을 잘하는 득재도 모두 추위에 몸이 한껏 쪼그라들었다.      


 그때였다.     


 쾅, 하며 문이 열리고 터미네이터가 금니를 반짝이며 웃었다.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 정학당하면 부모님이 학교에 와야 할 텐데. 터미네이터는 우리를 일렬로 세우고는 따라오라고 했다.


 우리는 아우슈비츠의 포로들처럼 흙탕물에 붉게 물든 팬티를 입고 고개를 숙이고 터미네이터를 따라갔다. 터미네이터는 우리를 교무실 앞의 당직실로 오라고 하더니 당직실에 딸린 샤워실에 우리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쏴하며 뜨거운 물을 틀어 주었다.


 “감기 들라 샤워해 새끼들아. 타월은 하나씩 있으니까 쓰고 나중에 다 빨아와.”     


 뜨겁게 쏟아지던 샤워기의 물줄기는 차갑게 내리는 비보다 훨씬 보드라웠고 그렇게 오기 싫었던 학교가 처음으로 안온감으로 충만했다. 샤워실의 수증기는 우리를 따뜻함으로 감싸 안았다. 슬프기도 좋기도 한 Bitter Sweet Symphony였다.


버브의 Bitter Sweet Symphony https://youtu.be/1lyu1KKwC74

The Ver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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