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관 Apr 20. 2023

23. 설희에게 가장 넓고 큰 세상

소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810

 깜순이가 지난번에 낳은 새끼가 네 마리였다. 우리는 몹시 흥분했다. 생명이 태어나니 우리의 작은 세계도 달라 보였다. 깜순이가 꽤 힘겹게 새끼들을 낳았기 때문에 꼼지락거리는 새끼들을 보는 순간 우리는 감격했다. 세 마리의 검은색 사이에 유난히 하얀 새끼 한 마리가 있었다.     


 봄날에 태어난 눈송이 같아서 우리는 그 녀석의 이름을 ‘설희’라고 불렀다. 하지만 설희는 다른 새끼들에 비해 눈을 뜨지도 못했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어설펐다. 어미의 젖도 잘 빨지 못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걱정이 되어서 설희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는데, 가망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깜순이가 다니면서 뭘 잘못 주워 먹었던지 설희는 뱃속에서 영양분을 거의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설희를 집으로 안고 온 아버지는 깜순이 옆에 가만히 눕혔다. 유난히 작고 꼼지락 거림에 둔한 설희는 저대로 고요하게 죽을 것만 같았다. 미미하게 움직이는 몸이 애처롭고 안타깝기만 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오면 오랫동안 설희가 누워있는 깜순이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그 소식을 전했고 전화를 통해 듣던 외할머니는 그날 저녁에 집으로 왔다. 외할머니는 뭐랄까 그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는데 달려오신 거였다. 외할머니는 성류굴이 있는 울진에서도 불영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오랫동안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동네에 살고 있기에 그곳에서 우리 집으로 오려면 네 시간은 넘어 걸렸다.  

   

 외할머니는 강단 있고 외할아버지 없이 여섯 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시골에서 키워야 했기에 단단해져야만 했고 그것이 평생 몸에 밴 사람이었다. 어쩐지 그렇게 쉽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닌데 외할머니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바로 설희를 데리고 와가로 가셨다.    

 

 “내가 데리고 가마. 여기서는 가망이 없는 것 같으니 죽어도 공기 좋은데 묻히는 게 나을게다.”


 외할머니는 엄마와 아버지의 결혼을 엄청 반대하셨다. 엄마는 쫓겨나다시피 결혼을 했고 누구보다 심하게 반대를 한 외할머니는 두 사람을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외할머니는 아버지를 아주 좋아했다. 박 서방 하며 늘 싱글벙글 웃으며 우리 집에 오곤 했다. 내 손에 카메라가 쥐어진 뒤로 외할머니의 웃는 모습을 많이 담으려고 했는데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아마도 외할머니와 아버지는 겉으로는 개를 싫어하는 척하면서 실은 아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 모순이 닮았다. 개 따위는 키워서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새끼들을 낳으면 죽을 만들어 먹인다든가, 이불을 깔아준다든가.     


 열 달이 지난 그해 겨울 기철이와 상후와 함께 외가에 놀러 갔다. 오래된 영화에서나 나오는 산골동네라 겨울이면 냉철한 차가움과 눈이 한 번 내리면 일 미터가 넘게 쌓여 마을의 입장과는 달리 고립된 공간 속에서 지내야 하는 것 또한 놀러 간 우리로서는 아주 흥미로운 일이라 느꼈다.     


 기철이는 나의 외가에 몇 번 같이 가서 그곳의 정취를 알고 있었고 거기서 시를 적는 것을 좋아했다. 상후는 처음 오는 것이었고, 겨울에 몇 시간을 버스를 타고 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갔다. 바다는 끊임없이 하얀 포말을 만들며 차장으로 이어지는데 집 근처에서 볼 수 있는 바다와는 달랐다.    

  

 울진 터미널에 내리면 몇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타고 또 구불구불한 불영계곡 안으로 올라갔다. 길이 구불구불하니 멀미를 하는 사람은 조심해야 했고, 창문을 열고 불영계곡이 저 밑으로 이어지며, 저기에 떨어지면 목숨이 위태로울 낭떠러지 같은 곳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올라가서 외가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반기는 건 외할머니와 건강한 설희였다. 설희는 무럭무럭 자라 털이 송송하니 복슬복슬했으며 짖으면 그 소리가 우렁찼다. 외할머니는 설희를 봄에 데리고 와서 방의 따뜻한 곳에 눕힌 다음 축 쳐진 젖을 설희의 입을 벌려 물렸다. 나오지도 않는 젖을 물리고 외할머니는 아들을 키우는 것처럼 설희를 대했다. 동네에는 소를 많이 키우기에 가축병원의 의사에게 데리고 가서 보이고 약을 먹이고 온도를 맞춰 우유를 먹이고 또 젖을 물리는 걸 매일매일 했다.     


 설희는 외할머니의 그 정성을 알았는지 시간이 흐르니 젖을 자의로 빨았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그날 외할머니는 많이 우셨다. 설희는 공벌레처럼 말고 있던 몸을 천천히 펴듯 눈을 뜨고 다리를 움직였다. 우리는 그런 설희가 대견하기도 했고 예쁘기도 했다. 그래서 외가에 있던 5일 동안 설희와 많이 놀았다. 설희는 처음 보는 우리가 낯설지 않은 지 우리와 가깝게 지냈다.


 돼지 사육하는 곳으로 가서 설희는 돼지들에게 힘껏 짖기도 했고, 우리에게 빨리 따라오라며 간 곳은- 개울가의 안쪽으로 작은 폭포가 있는 곳으로 기철이는 그 폭포의 이름을 서리수(설희수)라고 지었다. 기철이는 휘파람으로 비틀스의 헤이주드를 불렀다. 우리 셋은 헤이주드를 부르며 서리수 근처에서 추억을 나눠가졌다.     


 그다음 해 외할머니는 밭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한 트럭에 치여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대로 돌아가셨기에 고통 같은 것은 없었다고 했다. 엄마는 많이 울었다. 설희도 많이 울었다. 외숙모의 말로는 몇 달을 마당에 앉아서 돌아오지 않는 외할머니를 기다리며 그렇게 울었다고 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달 뒤에 외할머니가 차에 치인 그 도로에서 같은 트럭에 치여 설희도 죽고 말았다. 싸늘하게 식어간 설희를 외할머니 옆에 같이 묻었다.     


 개와의 인연이라는 게 어쩌면 별거 아닐 수 있고, 그저 스쳐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의 활동반경은 좁다. 인간은 여행도 가고 이사도 하지만 개는 주인이 있는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개도 행복하다. 주인이 있는 그 좁은 곳에 개에게는 가장 넓은 곳이니까.      


 인간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활동반경이 넓지 않다. 외할머니는 여행도, 외식도 귀찮았지만 설희와 함께 둘은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서로 위안이 되어주며 그렇게 서로 기대며 지냈다. 죽음이 가까이 온 사람과 죽기 일보 직전의 새끼 강아지는 그렇게 만나서 좁지만 같은 곳에서 넓은 세상을 지낸 것이다.      



  비틀스의 헤이 쥬드 https://youtu.be/A_MjCqQoLLA

The Beatles


매거진의 이전글 22. 불어 선생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