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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n 17. 2023

흐름에 떠내려가는 건 쓰레기뿐

내가 그 속에 있다


매일 시인들의 시 한 대목을 스토리에 올리고 있다. 커피를 투고하러 가면서 골목의 풍경을 하나 찍고 그 배경에 시인들의 시 한 대목을 적어 올리고 있다. 나의 인스타 팔로워들은 대체로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매일 올리면 매일 보고 간다.


같은 곳을 사진으로 찍는데 비슷한 것 같지만 매일 다르다. 구름이라든가, 지나다니는 사람이라든가, 차들이나 날씨 때문에 같은 곳이지만 다르게 보인다. 십 년 전에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지금 사진에 보이는 모습 밖으로, 좌우로, 그리고 내 뒤로는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아케이드가 생겨나고 분위기가 왕창 바뀌었지만 지금 보이는 이 풍경의 모습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 십 년이 더 지나면 달라지겠지. 그러나 어떻게 달라지는지 크게 궁금하지 않다.


몇 백억 년 후의 우주와 지구에 관한 유튜브의 한 영상이 2주 정도 지났는데 거의 20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어서 조금 놀랐다. 나는 클릭을 해서 보지는 않았다. 나 같은 인간은 아주 먼 미래의 우주와 지구가 어떻게 변하는지 크게 궁금하지 않다. 나처럼 아주 재미없는 인간은 먼 미래는 관심이 없다. 내일도 관심이 없다. 그저 오늘도 살아남자!, 살아남으면 오늘 하루 잘 견뎠군. 하는 축에 속하는 인간인 것이다.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도 육상경기를 준비하는 여고생이 오늘도 열심히 하자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남자! 라며 파이팅을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고생도 나의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나와 다른 점은 여고생은 힘든 하루를 살아내면서도 웃으며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갔고, 나는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웃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


그런 인간인지라 몇 백억 년 후의 우주의 변화와 지구의 달라짐에 관심이 없다. 계획 따위 백날 잡아봐야 계획대로 되는 일도 없다. 내일보다는 오늘 하루 잘 견디는 게 나의 계획 내지는 목표가 된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인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이렇게 지내왔다. 오늘 하루 내가 견디는 것 때문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고, 주로 여름에 한정되어 있지만 실컷 달리고 시원한 곳에서 맥주를 마시며 소설이나 읽으며 보내기도 했다.

여름에는 조깅 후 얼음을 잔뜩 넣은 맥주를 홀짝이는 맛이지


당신은 왜 그렇게 제 멋대로 살아가는 겁니까.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지금 까지 누군가에게 또는 기관에게 손 벌리지 않고 어떻게든 쓰러지지 않고 잘 버텨왔다. 폴란드의 유명한 시인이, 원천에 닿으려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흐름에 떠내려가는 건 쓰레기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흐름에 딸려 내려가는 쓰레기 ‘1’ 정도 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쓰레기인 것에 별로 인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쓰레기는 더 이상 더러워질 수도 없으니까 막 뒹굴어도 된다.


그렇다고 해도 열심히 한 것도 있다. 나 같은 재미없는 인간의 특징이라면 했던 걸 계속하고, 봤던 걸 계속 보고, 갔던 곳에 계속 가는 것이다. 매일 조깅을 하고 그 기록을 어딘가에 올리고, 매일 조금씩 글을 써서 마찬가지로 올리고 있다. 올해는 2월에 하루, 지난달에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거리를 비슷하게 달렸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비 막이가 있는 곳까지 가서 근력 운동을 하고 들어왔다.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비가 와도 조깅을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꽤 있다. 뭐랄까 비를 맞으며 달려본 사람이 있다면 그 기분을 잘 알 텐데, 여름이라 춥지도 않아서 비를 잔뜩 맞으며 저어어어곳까지 달리는 상쾌한 기분은 중독이다.


이렇게 지내면서도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살면서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 있다. 요컨대 이발소에서 머리(카락)를 자르면서, 이발사 아저씨가, 또는 미용사가 갑자기 가위를 들고 나의 눈을 찌르지는 않겠지? 무서운데? 같은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길을 걸어가면서 도로를 달리는 저 자동차가 갑자기 나를 덮칠까? 높은 건물에서 누군가 아령을 밑으로 집어던지지는 않겠지? 라며 누가 이런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쓰며 살아갈까.


하지만 부산 돌려차기 남자 같은 사건이 종종 일어나는 요즘에는 그 쓸데없는 생각이 쓸모없는 생각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 같다.


돌려차기에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앞으로 그런 불안에 늘 떨며 지내야 할 텐데 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길을 걸어가다가 수십 번 뒤로 돌아볼 것이다. 일상이 무너지면 일탈도,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눈으로 보이는 풍경은 너무나 평온하게 흘러간다. 흐름에 딸려 내려가는 쓰레기를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쓰레기가 되면 주위 풍경을 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기지 않을까.


꿈도 있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잔뜩 있었을 텐데 이유도 전조도 없이 사건이 휘말리고 말았다. 그리고 일상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은 졸음운전을 해버린 운전사 때문에 추억의 한 편에 곱게 남아야 할 여행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중상을 입은 학생도 있다고 한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 요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떻든 오늘 하루를 살아내야 내일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으니까.



시나 읽으며 하루 종일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시는 짧으나 시 속의 서사는 장편 소설만큼 크고 넓어서 생각하기 좋다.

오늘의 선곡은 너무나 좋은 노래 시카고의 하 투 세이 아임 쏘리  https://youtu.be/1A0MPWseJIE

RH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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