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4.
맥주 바에는 각종 채소와 과일로 북적였다.
마치 오늘 밤에 누군가를 태워 없애버릴 것처럼 양껏 빼입고, 멋을 부리고 서로를 탐닉하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당근도 무의 곁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건 바짝 말린 도라지를 삶아 먹는 거라네. 그럼 코털이 자라지 않지."
당근은 미간을 좁히며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말린 도라지를 먹는 것과 코털이 자라지 않는 것과 어떠한 연관을 찾아보려고 해도 전혀 접합점이 없었다.
깨진 계란이 저쪽에서 이쪽으로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당근은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자네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군. 1984년 전에는 많은 도라지들이 희생을 당했지. 도라지는 말이지 껍질을 잘 까서 70도 이상의 뜨거운 난풍에 말려야 하네. 그러려면 무엇이 가장 적합하겠나? 그렇지 바로 헤어드라이기라네"
무는 조용히 당근에게 이야기를 하다가 검은 숯 바텐에게 따뜻한 맥주를 한잔 더 주문했다.
이내 따뜻한 거품을 일으키는 맥주가 얼음판 같은 깨끗한 유리잔에 담겨 왔다.
무도 금기시되는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맥주를 벌컥 마시다 조금 흘렀다.
맥주가 무의 배에 다시 떨어졌고, 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접시 위의 칼로 맥주가 묻은 자신의 배를 긁어냈다.
무의 껍질은 벗겨져 바닥에 떨어졌다.
어디선가 배추벌레가 기어 와서 바닥에 떨어진 무의 깎여진 껍질을 주워 먹었다.
배추벌레의 몸은 계란의 점막이 말라붙어 있었고 비린 냄새가 났다.
무는 배추벌레의 냄새가 싫어서 들고 있는 곡괭이로 배를 찔러 툭 터트렸고, 옆 테이블에서 사과와 귤이 환호성을 질렀다.
검은 숯 바텐이 걸레를 들고 다가와서 배가 터져 죽은 배추벌레를 치웠다.
당근은 그 모습을 여러 가지 섞인 감정 어린 모습으로 쳐다봤다.
"이봐 자네, 약해지면 안 되네. 그래야 자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가 있지. 84년 이전에는 도라지들을 많이도 말려 죽였다네. 그것이 이 냉장고 세계에 적합하다고 여겼던 거야. 그 시대에 코털이 자라는 일은 드물었지. 모두가 말린 도라지를 잘도 먹고 다녔거든. 84년에 냉장고 나라의 냉장 기관에 이물질이 스며들어갔네. 그 시대에 냉장고 나라에 살고 있던 수많은 인파가 말라죽었다네. 도라지도 씨가 마를 뻔했지."
무는 조금 식어버린 맥주를 다 들이켰다.
"이봐, 당근 자네. 드라이기로 허벅다리에 열을 가해 본 적이 있는가? 드라이기라는 건 이리저리 흔들어가면서 열을 뿌려대야 드라이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지. 한데 드라이기를 허벅다리 한 부분에 대고 10초만 있으면 견디지 못할 뜨거움이 다리를 파고들지. 그 느낌 아나?"라고 말하는 무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해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