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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09. 2023

그녀는 아이팟 클래식 3

소설


3.


 그리고는 그녀의 시선은 아이팟 클래식에 꽂힌 채 영화에 몰두했다. 커피를 조용하게 마시며 말이다. 아이팟 클래식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가락은 예뻤다. ‘애니 홀’은 오래된 우디 알렌이 만든, 오래된 다이안 키튼과 함께 한 오래된 아름다운 영화였다. 아름다운 영화는 아름다운 기기 속에서 아름다운 손에 의해서 고요하게 흘러나왔다.

 
 주말이면 우리는 새벽에 만났다. 어스름한 새벽에 안 떠지는 눈을 뜨고 어스름한 공기 속에서 어스름한 모습으로 그녀를 만나러 나가는 것이 처음에는 고욕이었으나 시간이 꽤 지나고 나니 나는 익숙해졌고 새벽이라는 관념에 도취되었다. 나에게 새벽은 가습기에서 습기를 뿜어내는 병실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녀와 새벽에 만나기를 반복하고부터는 조금씩 그 안개가 걷혀갔다.


 “전 그렇게 생각을 해요. 아이팟 클래식은 어쩌면 새벽과 닮았다고 할까요. 우리는 하루 중에 대부분 새벽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니까요. 그렇지만 오전, 오후나 저녁을 잃어버린다면 사람들은 당장 큰일이 나죠. 아이팟 클래식을 잃어버리거나 없어졌다고 해서 아이폰을 잃어버린 거와 같은 절망감이 들지는 않아요. 물론 오늘의 새벽을 잃어버리고 나면 내일의 새벽을 맞이해야 하겠지만 당장 연락해야 할 곳에 못한다거나 하는, 은행 일을 보지 못해서 안달이 난다거나 이메일을 걸어 다니면서 확인을 못한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투영이 없어요. 새벽에 거래처를 가야 할 필요도 없구요. 새벽에 서류를 보낼 곳도 없다구요. 새벽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이팟 클래식에 가득 들어있는 음악을 듣고 이렇게 걷는 거예요. 오후나 저녁에 할 일은 그때에 하면 되는 거죠.”


 그녀가 건네준 이어폰에서 ‘렛 다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노래 ‘렛 다운’은 새벽에 이렇게 들어야 해요. 노래에 젖어들 수 있어요.”


 “아이팟 클래식과 함께 말이지”라고 내가 말하니 그녀가 새벽의 차가운 이슬을 머금은 채 웃었다.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회귀를 하고 있어요. 또 바라고 있구요. 터치를 쓰던 사람들이 아이팟 클래식을 듣고 있어요.”


 우리는 손을 잡고 ‘렛 다운’을 들으며 새벽의 거리를 걸었다. 반드시 공원이나 소나무가 있는 곳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새벽의 도로가의 인도나 거리를 걸으면 된다.


 “렛 다운도 ‘아이팟 클래식’이어야 해요. 그래야 톰 요크의 절제된 허무를 들을 수 있어요.”


 우리는 ‘렛 다운’을 16번 듣고 서로 자리를 바꾸어서 이어폰을 4번 번갈아가면서 귀에 꽂았으며 대략 8킬로미터쯤 걸었다. 날이 밝아왔고 버스만 간간히 다녔던 도로는 어느새 많은 차들이 달렸으며 잠이 덜 깬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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