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인칭 단수

하루키 소설

by 교관


오늘은 하루키의 사소설 격인 ‘일인칭 단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하루키의 장편소설이 아직 국내에 출간이 되지 않아서 한국 출판물로는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 ‘일인칭 단수’가 제일 마지막에 나온 소설집이다.


소설집 속에 수록된 소설, 위드 더 비틀스는 두 번 정도 읽었다. 크림은 많이 읽었다. 한국 출판물이 나오기 전에 번역책자를 만들어 봤기 때문에 꽤 여러 번 읽었다. 적어도 15번은 넘게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이 아스라이 저 멀리.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도 많이 읽었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15년 전에 나온 시나가와 원숭이의 후편이다. 시나가와 원숭이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 하루키가 여행 중에 만나서 고백을 듣는 이야기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단편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중국 배우 후거가 재해석을 해서 영화로 만들었다. 꽤 잘 만들었다. 시나가와 원숭이가 이름을 훔쳐가는 이야기로, 현실에서 이름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로 불리며 조금씩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다가 결국 자신도 자신의 이름을 모르게 되는, 아무튼 소설을 읽으면 재미있다.


이 시나가와 원숭이는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해서 쓴 '고양이를 버리다'에도 등장한다. 첫 시작에 시나가와 원숭이가 나타나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이름과 성, 둘 중에 하나의 선택권을 주겠다. 무라카미와 하루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너는 무엇을 택하겠나,라며 등장한다.


하루키의 글을 읽어보면, 특히 소설을 읽어보면 예전 소설들이 최근의 소설로 이어지면서 전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나가와 원숭이처럼 같은 문장을 여러 소설에 사용하기도 하며, 와타나베 노보루라는 이름도 여기저기 소설에 등장한다. 이 이름은 꽤 부정적이고 호러블 한 인물의 이름으로 주로 쓰였는데 하루키의 절친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본명이다.


일인칭 단수는 소설이라기보다 거의 에세이에 가깝다. 일인칭 단수를 읽어보면 위에서처럼 아내는 혼자서 중국음식을 먹으러 간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중국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음식에 들어가는 향신료 때문에 알레르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아내는 중국음식이 먹고 싶어 지면 중국음식을 못 먹는 주인공 때문에 친한 여자 친구들을 불러내서 먹으러 간다고 했다.라고 마치 남에게 말하듯 했지만 그건 하루키 본인의 이야기다.


일인칭 단수에는 주인공이 하루키 본인이라고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확실하게 주인공이 하루키 본인이라는 것을 안다. 만약 처음 일인칭 단수를 읽는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아니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라며 따지듯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을 정도다.


하루키의 일상의 여백을 읽어보면 확실하게 소설 일인칭 단수에 나온 문장이 그대로 주욱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에세이에 중국음식을 전혀 먹지 못해서 하루키는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아내가 몰래 중국음식이 아닌 척하며 하루키에게 먹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만 이야기, 그리하여 아내는 중국음식이 먹고플 때는 친구들과 간다는 이야기를 죽 써놨다.


하루키는 여러 글에서 자신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이전에 피터캣을 운영하면서 담배도 하루에 한 갑씩 피우고 먹는 것도 가리지 않고 먹었다고 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활방식으로는 전혀 글을 쓰는 패턴을 찾을 수 없어서 기름기 있는 음식을 멀리하고 달리기를 하며 담배를 끊어 버렸다고 했다.


그리하여 위의 에세이에서 아내가 라면이 먹고 싶은데 하루키는 라면을 먹지 못해서 결국 혼자서 라면을 먹다가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 라면을 먹으러 오는 여자만은 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옆에 테이블에서 들었다고 하루키에게 마구 화를 냈다.


그런데 혼자서 라면을 먹는 40대 여인이 어때서 그럴까. 나 돼지국밥 집에 한창 다닐 때 홀로 국밥을 맛나게 먹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소주병도 앞에 두고 면사리도 넣어서 야무지게 먹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았는데.


하루키는 이렇게 먹는 것 때문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 겸 여행을 하면서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먼 북소리에도 잘 나와있고, 태엽 감는 새의 연대기 속의 노몬한과 만주 이야기를 보고 잡지사에서 실제로 가보지 않겠냐 해서 여행길에 오르게 되어서 쓴 하루키의 여행법, 우천염전에도 잘 나와있다.


여행지에서 먹는 것이 안 맞아서 불만 섞인 말을 내뱉는 모습부터 쇠파리, 구더기, 철조망, 국경까지 긴박한 이야기도 잘 나온다. 그러면서 노몬한 전투에 대한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고 한다.


[해가 지면 몽고의 하늘은 별들로 뒤덮인다]로 시작해서 [피투성이의 싸움을 벌이고, 그곳에서 수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총에 맞고 화염 방사기에 불태워지고, 탱크의 캐터필러에 깔려 죽는다며 생매장을 당하고 또 그것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고 팔이나 다리를 잃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다]라고 쓴 부분을 읽으면 하루키식 유머만으로 이루어진 여행기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져서 좋다.


이런 기록은 장편 소설 태엽 감는 새의 연대기에 잘 나온다. 포로의 가죽을 조금씩 벗기는 이야기, 전투 중에 버려진 군인들을 처리하는 방법. 전쟁의 아이러니가 바로 평화를 위해 서로의 몸에 총을 겨누고 총구멍을 낸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모순인 것이다. 온통 모순으로 점철된 처절한 모습까지 소설에 잘 녹아있다.


어떻든 일인칭 단수는 에세이에 근접한 소설, 사소설인 것이다. 특히 아내에 대한 부분은 실제 하루키의 아내 요코 여사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키는 그간 아내에 대해서 대체로 함구하고 있지만 일상의 여백을 읽으면 아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래도 돼? 할 정도다. 아내가 갑자기 일정을 바꾸자고 하는 바람에 난처했는데 이유가, 아내가 읽는 책에 빠져서 책에 나오는 곳으로 갑자기 사자고 해서 혼났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내에게 핀잔을 들은 이야기를 마치 수다를 떨듯 주절주절하고, 또 하루키 자신은 바빠서 취재를 가지 못하니 사진기사 겸 조사원을 파견하는데 그 사람이 아내였다는 이야기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한글자막]중국 마이크로필름(微电影,웨이띠엔잉) 후거 각본,주연 《品川猴》(시나가와 원숭이) https://youtu.be/NeCZiCI8IAI

중국문화맛보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루키 단편 소설 -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