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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4. 2023

이 송 주 1

소설


1.


아마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을 거야.


그해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비가 내리면 교실에서 나가지 않고 비가 운동장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그렇게 많던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벗어나 휑하고 큰 운동장은 마치 비를 마시는 것 같았다. 나는 주번이라 학교에 남아서 뒷정리는 하고 있었다. 같이 주번 활동을 하던 아이들도 학교를 벗어났지만 나는 우산도 없고 교실에서 비가 쏟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실은 아까 청소를 하다가 음악실에 그 애가 남아서 피아노 연습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복도에서 계속 보고 있다가 이렇게 늦어 버렸다. 그 애는 같은 6학년으로 인기가 가장 많인 여자애였다. 반은 달라도 나는 그 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 애의 이름은 송주다.


이 송 주.


아마 4, 5, 6학년 애들은 전부 알고 있을 것이다. 같은 반이 된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아직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다. 나는 송주의 피아노 소리가 멈추지 않아 복도에서 그 연주를 계속 들었다. 송주는 6학년에서 단연 인기가 제일 좋았다. 5학년과 4학년에게도 인기가 좋은 애였다. 송주는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는데 다른 여자아이들에 비해 단발이었다. 보이시한 매력이 있었다.


그렇다고 선머슴아 같은 면모가 강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예쁜 얼굴에 팔다리가 길쭉하고 달리기도 잘했다. 송주는 가끔 운동장을 달리곤 했다. 나는 교실에서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무엇보다 송주는 피아노를 잘 쳤고 교내 반주를 송주가 도맡아 했다.


송주는 약국집 딸내미였다. 아버지가 약사였고 엄마가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우리 집과는 너무나 달랐다. 송주는 선생님들에게도 인기가 좋아서 송주의 곁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런 송주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만 볼 뿐이었다.


송주의 웃음은 여름의 아침에 갓 나온 햇살 같았다. 깨끗하고 맑은 웃음을 지니고 있어서 주위의 애들도 송주의 그런 매력에 빠져들었다. 나도 거기에 끼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전혀 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송주를 좋아하는 남자애들도 많았다. 그 녀석들 대부분이 공부와 운동도 잘하고 용돈이 많아서 하교 후에 송주를 비롯한 여자애들을 데리고 떡볶이를 먹으러 자주 갔다. 게 중에는 야구부 승재도 있었다.


가끔 이렇게 학교에 남아서 송주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 게 좋다. 피아노 소리는 빗소리와 함께 앙상블로 그림이 되었다. 나는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누릴 수 있을까. 여름에 떨어지는 비는 푸르름을 머금고 있었다. 송주를 보고 있으면 그 푸르름이 떨림으로 전해졌다. 여름의 해를 받은 송주는 말갛게 익은 복숭아 같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활짝 웃는 얼굴과 체육복을 입었을 때 살짝 드러나는 가슴과 길쭉한 손가락은 또래의 여자 애들이 갖지 못한 언어를 담고 있었다.


나는 멀리서 송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송주를 보고 있으면 확실한 진실보다는 나처럼 희미한 가능성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착각이 들었다. 기분 좋아지는 애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송주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쿠아를 닮았다. 물로 된 장막을 걷으면 거기에 송주가 서 있을 것만 같은, 그래서 부르면 송주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봐줄 것만 같았다. 송주가 그날 음악실에 남아서 조용하게 연주한 곡이 아쿠아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송주 자신과 닮은 곡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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