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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관 Jul 29. 2023

이 송 주 6

소설


6.


약국에는 시종일관 리스트가 흐르고 있었다. 손님이 없을 때 “리스트의 소나타 b단조라는 곡인데,,,"라며 송주의 아버지가 설명을 해주었지만 우리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송주의 집과 약국에는 늘 클래식이 흐른다고 했다. 송주가 나에게 다정한 말을 한 없이 쏟아낼 때는 그 말이 마치 따뜻한 비 같았다. 이 비를 영원히 맞고 싶었다.


송주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가는지 몰랐다. 송주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둘이 함께 있으면 송주는 나의 손을 내내 잡고 있었다. 약국에서 송주의 아버지가 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송주의 아버지도 친하게 지내는 우리를 위해 수박화채를 내어주고, 사브레도 접시에 담아 주었다. 행복했다. 집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행복이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불안하다는 기분도 같이 들었다.


행복한데 불안했다. 이런 순간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송주는 잠시 머리에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벌레가 들어있을 뿐이다. 그 벌레가 날아가 버리고 나면 송주도 나에게서 멀어질 것이다.


“우린 여기까지야”같은, 순정만화에서나 나오는 말을 남기고 갈 것이다. 비는 언젠가 그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날이 보이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만약 그 말을 내뱉어버리면 승재처럼 버림받을 것 같았다. 아직 그 누구에게도, 그동안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진정 사랑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송주에게는 말하고 싶었다. 비가 그치기 전에 말하고 싶었다. 온 세상이 뜨거운 태양에 바짝 마르기 전에 말하고 싶었다.


송주는 수줍음이 많고 소심한 나에 비해서 과감했다. 길거리에서도 거리낌 없이 손을 잡아 주었고 마음에 드는 공책은 내 것까지 두 권을 구입했다. 나를 데리고  극장에서 영화 보는 것도 꺼려하지 않았다. 극장에서는 우리가 볼 만한 영화가 하지 않았고 대부분 청소년은 못 들어가게 했다.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들어가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봤다. 나는 입을 벌리고 봤고 송주는 그런 나를 웃음을 참아가며 쳐다보았다. 주번이 끝나고도 나는 학교에 남았다. 송주가 피아노 연습을 끝내고 나왔을 때 내가 기다리고 있으면 얼굴이 환해진 채 달려 나왔다.


여름의 중간인 어느 날 방송국이 있는 듯한 뒷산에 우리는 올라갔다. 모처럼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하게 떠올라 산의 나뭇잎이 청량감을 잔뜩 머금었다. 방송국이 있는 뒷산에 오르면 동네가 장난감 집들처럼 전부 보이는 장소가 있었다.


어스름한 밤이 되기 전에 동네에 형형색색 불이 들어오고 저 멀리서 노을이 지는 모습이 꼭 그림 같아서 송주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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